나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추락하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나는 네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눈의 비명을 들었다.
... ...
그때 나의 마음은 그저 투명했다.
물을 만지면 푸른 색에 잠기고 꽃밭을 걸으며 총천연색으로 물들기도 했지.
지금은 마음의 단면을 살펴 보아도 핏빛이다.
... ...
나는 너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눈을 감지 말라고. -p53-
내가 알고 있는 시의 구조와는 전혀 다른 시어들의 나열이었다.
여백이 많은 것이 시라고 느껴던 나의 상식을 깨뜨린 시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이란 시는
빽빽하게 빈 틈없는 구조로 쓰여져 있었다.
사랑에 관하여도 추락과 비명, 핏빛이란 단어들을 사용한 시인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책 뒤부분에 쓰여진 시인노트를 읽으며 시인에 대한 생각을 한 번 하게 된다.
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시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는, 그러나 혼자 재미있게 할 수 있는,그런 게임 같다고...
또는 혼자 추는 춤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시인 에세이에 좋은 친구가 되어 있는 그와의 차이점에 대해 정리한
'세계의 끝에서 영원할 수 있다면'의
내용이 인상깊었다.
주식이 샐러드인 그와 ,주식이 인스턴트인 나,
술을 즐겨하지 않는 그와 술을 즐겨하는 나
산책을 좋아하는 그와 누워 있기를 좋아하는 나
감정의 기복이 큰 그와 기복이 적은 나 등의 10가지의 대립되는 차이점이 있음에도
여전히 좋은 친구인 그에게
작가가 쓴 시를 읽혀주었고, 그는 시인의 첫 독자라고 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것이라 한다.
나는 그냥,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무언가를 싫어 하는 데에는 이유가 분명한데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불분명할 때가 많다.
그럴때는 그냥, 이라고 말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