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프랑스 여행에서의 숙박도 호텔을 선택하지 않는다.
텐트촌의 삼각텐트 숙박을 선택하고
여행지에서의 순수한 자유와 고독의 공간으로 삼각텐트에서의 낭만과 몽상을 즐긴다.
인도 자이푸르행 기차에서도
인도의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던 마음으로
6등칸을 선택해 숙소로 삼는다.
지나치게 화려한 숙소나 쾌적한 숙소가
여행자들의 낯선 것에 대한 심연의 욕구를 빼앗는 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상에서 누렸던 편안한 육체적 쾌락을 거부하고 있었다.
인도의 수많은 교통수단 중 가장 느리고 위험해 보이는
사이클 릭샤를 선택하는 저자의 여행은
고통에 가까운 것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뒷자리의 손님을 끄는 릭샤꾼을
조금 높은 위치에서 거만한 자세로 감시하듯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릭샤의 구조에
손님이라는 자신의 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
릭샤꾼들의 고통을 이용하는 자신의 편안함이 비도덕적인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손님을 태우는 것이 릭샤꾼의 삶의 끈이고 자신들의 존재 근거이며
삶 자체이기에 릭샤를 타야하고,
손님이라는 불편한 지위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도는 슬프다. -p269-
안데스 산맥 위의 고원에 펼쳐진 티티카카 호수를 행하는 기차의 삼등칸에서
저자는 또 계급을 본다.
대부분의 관광객 차지인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와
가난한 배낭족이거나 잉카제국의 후손 원주민으로 메워진 삼등칸...
우리의 인생이 고달프고 지루한 일상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삼등칸은 언제나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삼등칸에서는 차창 밖의 어떤 아름다운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삼등칸은 결코 달콤할 수 없는 그들의 인생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가난하고 고달픈 이들의 여정, 그것은 분명 여행과 다르다. -p299-
책에 자주 언급되는 계급이란 단어는 나 또한 불편해진다.
어쩌면 모든 곳에 존재하는 레벨, 계급에 관해
그동안의 누적된 불편한 감정들 때문일 수도 있겠다.
직업의 귀천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업은 아주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책에 자주 언급된 계급이라는 단어는
그런 시선을 거두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싶기도 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들이기에
세상의 모든 일들은 꼭 필요하고 신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