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 최인호 여행산문
최인호 지음 / 마인드큐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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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최인호-

 

 

마치 시를 써 놓은 듯한 책 날개의 작가에 대한 소개를 읽으며

책에서 보여질 문장들이 기대 되었다.

어떤 아름다운 묘사들이 담겨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게 되었다.

아니, 이미 책의 제목에서부터 였을 것이다.

단지 삶에 대한 지리한 권태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변화없는 일상에서의 지루함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던 제목이다.

 

20년간의 시간, 200개의 도시, 50개의 문학과 철학이 배낭여행으로 만났다라는 것...

여행정보가 아닌 작가의 여행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는 책이다.

 

책의 목차에 열거 되어 있는 여덟단어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얻어진 열매와 같은 결실들로 함축된 단어일거라 생각해본다.

 

즐겁고 설레는 기쁨에 찬 여행길을 생각하고 책을 넘길 수 없었다.

1부의 첫장부터 인도의 바라나시 화장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시직되었다.

죽음의 화장터에서조차 가난으로 삶을 이어가는 구걸하는 노파의 깡통에 던져진 동전소리와

수의를 훔쳐 달아나는 꼬마들, 육신의 조각을 차지하려는 개의 이야기는

오히려 죽음과도 같은 처절한 삶을 말하고 있어서 불편한 마음이 앞섰다.

살기위해 찾아가는 죽음의 화장터였다.

 

시간을 즐기는 노천카페와 명품부티크와 화장품 가게로 상징되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도

낡은 배낭을 멘 저자는 부르주아들을 구경하는 불편한 구경꾼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계급의 장벽이 바리케이드가 되었다고 했다.

계급과 자본, 소외의 거리를 벗어나

퐁네프 다리 건너 생제르맹 거리에서야 비로소 저자는 편안해진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추픽추를 향한 페루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저자는

남미의 시인 파블로 페루다의 시 <산책>을 만나며 떠나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한다.

책의 부분 부분에 삽입되어 있는 문학작품들의 문장과 시들을

읽으며 저자와 함께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보게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마주치게 된 낯선 농부의 낡은 외투와 투박한 손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낡은 외투로 추위를 견뎌야했던 아카키예비치와

가진자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했던 자신의 가족의 삶과 대비되며

고골의 <외투>의 한 문장을 옮겨놓는다.

 

 p105

베트남 오지 고산지대의 안개속 박하 시장 여인들의 거래모습을 접하며

자신의 어머니와 갔던 어린 날의 시장에서의 200원짜리 자장면을 먹던 자신과

50원짜리 나이롱 굿수집으로 향한 어머니의 모습이 추억되고,

안개속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감춘다.

고향과 멀어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직선의 여행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결국, 출발점인 원점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는 곡선위의 점인 것을 안다.

 

 

각 부를 구분하는 페이지에 시선이 멈췄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발견한 배낭을 멘 여행자와

책의 모서리에 그려진 대각선 끝의 비행기...

왼쪽 페이지 아래 모서리엔 배낭 멘 여행자가

오른쪽 페이지 위 모서리엔 비행기가 그려져 있다.

직선의 어느 한 점에 머물며 얻게 되는 깨달음들이

여행자와 비행기 사이의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었다.

 

사막여행에서 만난 낙타를 끄는 소년 루이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뜨거운 태양아래 낙타의 그늘로 손님을 쉬게 하고

 어린 소년 루이는 손님과 함께 쉴 수 없다며 반대편에서 땀을 흘리며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하위계급으로 격하시켜 놓는

계급적 관계로 잘못 인식되어 있는 자본의 권력으로

자연스럽게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형성되어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는 저자는

루이와 주인이 아닌 친구가 된다.

루이가 친구라고 표현한 작은 물웅덩이 오아시스를 찾아

함께 발을 담근 채 여행의 피로를 푼다.

헤어지며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와 티셔츠를 선물하며

친구가 무엇인지 알려 준 루이를 자신의 어린왕자로 칭한다.

 

 p145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기적'이지.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p148 "내 친구 오아시스야"

 

저자는 프랑스 여행에서의 숙박도 호텔을 선택하지 않는다.

텐트촌의 삼각텐트 숙박을 선택하고

여행지에서의 순수한 자유와 고독의 공간으로 삼각텐트에서의 낭만과 몽상을 즐긴다.

인도 자이푸르행 기차에서도

인도의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던 마음으로

6등칸을 선택해 숙소로 삼는다.

 

지나치게 화려한 숙소나 쾌적한 숙소가

여행자들의 낯선 것에 대한 심연의 욕구를 빼앗는 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상에서 누렸던 편안한 육체적 쾌락을 거부하고 있었다.

 

인도의 수많은 교통수단 중 가장 느리고 위험해 보이는

사이클 릭샤를 선택하는 저자의 여행은

고통에 가까운 것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뒷자리의 손님을 끄는 릭샤꾼을

조금 높은 위치에서 거만한 자세로 감시하듯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릭샤의 구조에

손님이라는 자신의 자리가 불편하기만 하다.

 

릭샤꾼들의 고통을 이용하는 자신의 편안함이 비도덕적인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손님을 태우는 것이 릭샤꾼의 삶의 끈이고 자신들의 존재 근거이며

삶 자체이기에 릭샤를 타야하고,

손님이라는 불편한 지위에 머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도는 슬프다. -p269-

 

안데스 산맥 위의 고원에 펼쳐진 티티카카 호수를 행하는 기차의 삼등칸에서

저자는 또 계급을 본다.

대부분의 관광객 차지인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와

가난한 배낭족이거나 잉카제국의 후손 원주민으로 메워진 삼등칸...

 

우리의 인생이 고달프고 지루한 일상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삼등칸은 언제나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삼등칸에서는 차창 밖의 어떤 아름다운 풍경도 보이지 않는다.

삼등칸은 결코 달콤할 수 없는 그들의 인생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가난하고 고달픈 이들의 여정, 그것은 분명 여행과 다르다. -p299-

 

책에 자주 언급되는 계급이란 단어는 나 또한 불편해진다.

어쩌면 모든 곳에 존재하는 레벨, 계급에 관해

그동안의 누적된 불편한 감정들 때문일 수도 있겠다.

직업의 귀천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업은 아주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책에 자주 언급된 계급이라는 단어는

그런 시선을 거두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싶기도 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들이기에

세상의 모든 일들은 꼭 필요하고 신성하다.

 

 

인생은 기차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달리는 완행열차다.

사람들은 저마다 티켓 한 장씩을 얻어들고 자신만의 종착역을 향해 천천히 달려간다.

... ...

자신의 티켓에 찍혀 있는 곳.

바로 자신이 결정한 곳들이다. -p292-

 

 

저자의 여행의 시작점은 설렘이나 강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 대한 욕망과 유혹이었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의 실현에 대한 착각이었다고 했다.

 

저자의 여행준비는 언제나 '이틀',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짧은 여행 준비는 여기저기서 의외의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여행의 속도를 늦춰준다고...

 

뼈저린 낯선 것들을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저자의 여행 철학.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그 여행이 진정한 여행일수도 있다.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에 빠진 지금,

직접 낯섦을 찾아 나서는 여행은 현재 불가능하지만, 독서로 떠나는 여행은 자유롭다.

사회적 거리가 필요한 시점인만큼 우리는 우리가 머물 곳에서

책을 통해서 더 많은 간접 경험과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며

 감염병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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