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구름이었다 시인수첩 시인선 26
방수진 지음 / 문학수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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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구름이

었다

-방수진-

 

구름은 슬픔을 표면화하기보다 내재화한다.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자꾸 안으로 삭이면서 구름은 응결하여 점점 커진다.

그래서 구름이 담고 있는 감정들의 서사는 내밀하고 풍부하다.

문학평론가 허희님은 방수진 시집에 대한 평을 시집의 뒷편에 이렇게 써놓았다.

 

시집을 읽는 동안 무언가 무겁게 느껴지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평론가의 평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줄무늬 구름(권운), 무리를 띈 엷은 층 구름(권층운),

양털구름(권적운), 잿빛의 층을 이루는 구름(고층운),

어두운 잿빛을 띈 두꺼운 구름(난층운),

큰 탑 모양의 구름(적란운)...

 

알 수 없었던 구름의 이름들이 이렇게 많은가?

평론가는 구름의 속성을 간직한 채

형태와 색깔들이 변화한 방수진 시인의 시적 구름들을

수직적인 것, 수평적인 것,대각선적인 것의 세 방향으로 해명해 주고 있었다.

 

   시집을 읽으며 자연스레 올려다 보게 된 하늘의 구름...

마침 해가 지는 창으로 무겁게 흐르는 구름이 보였다.

 

1,2,3,4부로 되어 있는 시집의 차례에 앞서

'시인의 말'도 '시'로 써 놓은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구름이었다가,였다가...

통로였다가,이었다가...

이었다가,이었다가...

였다가,였다가...

 

하루도 같지 않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

시인의 마음은 잘 알 수 없겠지만, 내 마음에 드는 귀절이었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모두 다 옳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에서 좋았던 부분들을 옯겨보았다.

 

<폭우>

너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을 감았다.

커피는 따뜻했고

찻잔은 조금씩 기울었다.

한참 동안 침묵의 냄새를 맡았다.

커피가 한 겹씩 증발하기 시작했을 때

... ...

... ...

우리는 두 눈을 감고 있었고

귀로는 시간을 감고 있었고

... ...

... ...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십 년만의 폭우라지

... ...

 

<폭우>는 마치 풍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 감상되었다.

머릿 속에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도넛 이론>

우회전한 내가 사는 세계가

좌회전한 당신이 사는 세계를

몰래 뒤쫓고 있습니다.

... ...

... ...

하지만 나를 탈출하려는 당신의 속도와

당신에게 들어가려는 나의 발걸음은 알지도 몰라요.

우뚝 선 당신의 그림자와 앉은뱅이 나의 그림자는

결코 겹쳐질 수 없을 거예요

먼 행성의 공전이 우리를 기쁘게 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공전이 먼 행성을 춤추게 할 수는 없듯이

알 듯 알 수 없는 듯 아리송하지만,

결코 만나질 수 없는 사람들과의 간극이 연상되었다.

나를 당신이 알 수 없고 내가 당신을 알 수 없다는 느낌이다.

 

<불면>

쏟아진다

비,

통곡하듯

퍼붓는다

... ...

나는 내 속의 묽은 그림자를 본다.

... ...

... ...

내 이름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다 무엇인가

구름은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가

입천장이 다 헤지도록

알고 싶은

당신은 누구인가

 

불면의 괴로움은 익히 알고 있다.

내 속의 어떤 절규 처럼 느껴진다.

 

 

<화성으로부터, 여자>

화분을 샀다 물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

이파리 끝에서 자라는 이야기들을

들어주지도 않을 거면서

시퍼렇게 커가고 있는 한 생애를

덜컥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마치 어릴 적 당신이 불현듯 나를 등에 업고

이곳으로 도망친 날을 떠올리듯

... ...

2부의 시들은

티베트와 베이징등의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이방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가로등>

진실로 외로워 본 자들은 알지

어둠이 어둡지 않다는 걸

너무나 밝고 환해서

한 번의 마주침으로도

시력을 잃기도 한다는 걸

... ...

4부의 시들은 죽음이 연상되는 단어와 표현으로 마음이 무척 불편하고 무거워진다.

<A병동 326호>,<허공사용설명서>,<몽유>

시에서 느껴지는 아픔, 고통, 허공, 괴로움, 외로움,슬픔 등이 절절하다.

<심야버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힘겨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대기만성>

달린다

내딛는 발바닥의 온도가

일억 오천 살 앉은뱅이 행성의 뺨을

철썩 하고 후려칠 때까지

달릴 것이다

죽도록 달릴 것이다

 

마지막 시 <대기만성>에 다시 일어선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한 때 구름이었다'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견디고 버티고 다시 일어날 거라는 희망을 기대했던 것 같다.

 

평론가는 시인의 구름에서 반짝이는 실버라이닝을 독자에게 찾아준다.

"구름뒤에는 항상 빛이 있어요. 인생에서 빛을 찾으세요."

Look for the Silver L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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