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 알베르토 모라비아 Alberto Moravia 시리즈 1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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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멸

Il disprezzo

-알베르토 모라비아 -


이 일은 다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겁니다.

제 꿈은 극작가입니다.

그런데 왜 제 꿈을 이루지 못할까요?

결국 세상 탓, 현실탓이죠.

너무 풍족한 세상이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대신, 딴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죠.

왜냐하면 언제나 돈이 문제니까요.

경제적인 문제가 우리의 일, 직업, 꿈, 심지어 사랑에까지 영향을 미치죠. -p224-


책속의 '나(리카르도)'가 눈물까지 머금으며

자신의 아내를 유혹한 사람, 그리고 자신에게 돈을 주는 사람인 영화 제작자 바티스타에게 외치는 소리다.

 

소설의 첫 장 시작부터 독백이나 자기성찰 같은 느낌이 든 소설이었다.

내겐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들게하기도 했다.

알베르토 모리비아의 <경멸>은 '그런데 그녀가 달라졌다'부터 사건의 시작이다.

 

2년간의 신혼시절동안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주인공 리카르도와 에밀리아...

서로 사랑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이 부부에게 경제적인 현실의 문제들이 부딪혀오고

리카르도는 문학에 대한 야망을 잠시 접고 현실의 밥줄을 위해 영화 시나리오를 쓰게된다.

 

경멸! 이란 부정적인 제목때문에 소설 속에서 누가 누구를 향한, 또 무엇을 향한 경멸인가를 주인공 리카르도와 함께 나 또한 찾아나서게 되었다.

리카르도는 경제적으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제작자 바티스타의 제안으로늘 아내와 동행하며 영화에 대한 대화를 하는 시점부터 '경멸'을 추적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를 강인한 성격의 힘으로 품위를 지키나가며 애처로운 노력을 하는 아내 에밀리를 위해 어떻게든 그녀를 만족시키야 한다는 생각으로 괴로웠던 리카르도는 무리한 빚을 내어 아파트를 산다.

새 아파트로 이사온 날 자신의 공간을 확보한 아내 에밀리아의 각방선언은 리카르도에게는 지금까지 함께 느꼈던 것과 같은 관계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게 했다.

 

교양있고 학식있는 사람으로 예술작업을 하는 극작가로서 열정을 갖았던 '나(리카르도)'는 고충과 근심으로 그동안 꿈꿔오고 지켜왔던 자신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롭고 해결할 수 없는 근심으로 가득한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내의 자라온 환경에 길들여진 편견과 물질에 대한 욕심과 리카르도 자신의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이상과의 갈등이 시작되며 자신의 고충에 비해 평온하고 만족해 하는 아내에 대한 서운한 마음과 결국 종일 생각하는 것은 돈뿐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혐오스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강철같던 정신력 또한 점점 나약해져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p146 "난 당신을 경멸해"
 

 

악몽이었다.

나는 리카르도라는 남자이고, 그런 내게 에밀리아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멸하고 있었다. -p163-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영화화 하기 위해 감독 레인골드와 아내 에밀리아와 함께

카프리에 있는 바티스타의 별장으로 떠나는 리카르도...

바티스타의 제안에 아내를 또 바티스타의 차에 동행시킨다.

남편차로 가겠다는 아내의 말도 신경쓰지 않고 당황도, 불편한 표정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카프리에서 바티스타가 거칠게 아내를 유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회피하는 태도로 뒷걸음질친다.창을 통해 아내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아내의 몸짓을 자신을 경멸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다가서지 못한다.

당신은 그 일을 그만둘 용기가 없을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난 당신을 알아. -p231-

글쎄, 그게 인생이겠지.

...

이 말을 듣자 숨이 막히는 듯해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껏 그녀가 이렇게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판에 박힌 말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p235-

 

하지만 이제 당신 마음을 알고도 남아.

아무튼 이제 내 마음을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어.

당신에 대한 내 태도는 결정됐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와서 야단법석 떨지 말고 일이나 해. -p286-

 

이미 아내의 말 속엔 리카르도에 대한 경멸의 말투가 섞여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남성성을 잃고 있는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에밀리아의 감정에 이입되면서 무기력하고 답답한 리카르도의 끝없는 자신에게의 물음의 답을 찾아 경멸의 추적에 독자로서 따라가보게 된다.

 

성공의 비결이 뭔지 아나?

정거장 매표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 삶도 기다리는 거야.

한 번 서 있던 줄에서 떠나지 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만 하면 차례가 돌아오지.

우리의 차례가 오면 매표원이 표를 주잖아.

각자 지불한 돈에 맞춰 여행할 수 있지만,

원하기만하면 오스트리아행 차표도 살 수 있어 .

그렇게 먼 곳 까지 갈 생각이 없는 사람은 가까운 곳의 표를 사겠지

나는 자네가 아주 먼 곳으로 여행가는 차표를 받았으면 해. -p227-

 

희곡을 쓰고 싶다는 리카르도 말에 대한 답으로 영화사를 위해 시나리오를 쓰기 원하는 바티스타의 말이다.

자기를 싫어하던 아내 에밀리아의 감정을 사로잡은 바티스타를 인정하게 되면서 질투의 감정보다 한없이 슬픈 심정이 된 리카르도의 불안은 배로 늘어난다.

 

카프리 별장에선 영화 <오디세이>에 대해 서로 추구하는 면이 다른 세 사람의 의견 마찰이 시작된다.아주 현실적인 제작자 바티스타는 히트작을 만들길 원하며, 감독 레인골드는 프로이트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으로 심리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리카르도는 영화를 통해 타락하는 세계를 희석하고 싶어한다.

 

결국 리카르도는 바티스타가 추구하는 영화를 따를 수 없고 레인골드가 원하는 율리시스와 페넬로페의 심리에 자신과 에밀리아의 상황이 일치되는 것을 느끼며인정하고싶지 않은 마음에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돌려 말했다.

... ...

남을 위해 일하기 싫어. 날 위해 일하고 싶어.

... ...

거짓이라는 느낌보다 더 나쁜 건,

침착성과 합리성이라는 가면 아래 숨죽인 모순된 감정이었다. -p233-

 

렇구나.

에밀리아에게는 나도 바티스타도 중요하지 않구나.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기 집을 갖는 것이구나.

그래서 아무 걱정없이 오래 살 수 있는 집만 있으면 되겠구나.-p277-

 

같이 로마로 돌아가자는 리카드도의 말은 따르지 않고

로마로 가는 바티스타를 따라 에밀리아는 리카르도만 남겨두고 떠난다.

그리고 리카르도는 잃어버린 아내, 너무도 생생한 에밀리아의 환상을 쫒는다.


 

회색빛 끝없는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두 사람... 

이젠 어디에도 없는 탄력있고 매력적인 에밀리아의 환상을 허겁지겁 쫒아오며 뒤따르는 리카르도의 모습같다.

표지그림이 어디선 가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흑백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언뜻 영화 로마의 휴일의 계단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뒤따르는 남성의 자세는 확연히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이탈리아 소설을 접하게 된 계기가 되어 참 반가웠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으며 답을 찾아가는 리카르도의 모습이 안타깝기도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자신을 경멸한다는 아내의 말부터 시작은 되었지만, 어쩌면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자신을 향한 경멸일수도 있고, 또 아내를 향한 마음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결국 매일 돈만 생각할 수밖에 현실에 대한 경멸일수도 있지 않을까한다.

하지만 리카르도는 끝까지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자신이 꿈꾸는 아내의 환상을 쫒는다.

 

책 뒤편에 수록된 부록의 모라비아 소설론의 내용이 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해볼 수 있음에 큰 도움이 되었다.그리고 번역된 소설이 어느 땐 직역으로 인해 불편했던 적이 있었던터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번역된 문장들에 감탄한 책이기도 했다.

소설<경멸>을 영화화 한 <사랑과 경멸>을 찾아서 감상해보려 한다.

 

p320   "율리시스, 페넬로페와 함께 에밀리아가 이젠 이 넓은 바다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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