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이었다.
나는 리카르도라는 남자이고, 그런 내게 에밀리아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경멸하고 있었다. -p163-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영화화 하기 위해 감독 레인골드와 아내 에밀리아와 함께
카프리에 있는 바티스타의 별장으로 떠나는 리카르도...
바티스타의 제안에 아내를 또 바티스타의 차에 동행시킨다.
남편차로 가겠다는 아내의 말도 신경쓰지 않고 당황도, 불편한 표정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카프리에서 바티스타가 거칠게 아내를 유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회피하는 태도로 뒷걸음질친다.창을 통해 아내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아내의 몸짓을 자신을 경멸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다가서지 못한다.
당신은 그 일을 그만둘 용기가 없을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난 당신을 알아. -p231-
글쎄, 그게 인생이겠지.
...
이 말을 듣자 숨이 막히는 듯해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껏 그녀가 이렇게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판에 박힌 말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p235-
하지만 이제 당신 마음을 알고도 남아.
아무튼 이제 내 마음을 돌이키기에 너무 늦었어.
당신에 대한 내 태도는 결정됐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와서 야단법석 떨지 말고 일이나 해. -p286-
이미 아내의 말 속엔 리카르도에 대한 경멸의 말투가 섞여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남성성을 잃고 있는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에밀리아의 감정에 이입되면서 무기력하고 답답한 리카르도의 끝없는 자신에게의 물음의 답을 찾아 경멸의 추적에 독자로서 따라가보게 된다.
성공의 비결이 뭔지 아나?
정거장 매표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 삶도 기다리는 거야.
한 번 서 있던 줄에서 떠나지 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만 하면 차례가 돌아오지.
우리의 차례가 오면 매표원이 표를 주잖아.
각자 지불한 돈에 맞춰 여행할 수 있지만,
원하기만하면 오스트리아행 차표도 살 수 있어 .
그렇게 먼 곳 까지 갈 생각이 없는 사람은 가까운 곳의 표를 사겠지
나는 자네가 아주 먼 곳으로 여행가는 차표를 받았으면 해. -p227-
희곡을 쓰고 싶다는 리카르도 말에 대한 답으로 영화사를 위해 시나리오를 쓰기 원하는 바티스타의 말이다.
자기를 싫어하던 아내 에밀리아의 감정을 사로잡은 바티스타를 인정하게 되면서 질투의 감정보다 한없이 슬픈 심정이 된 리카르도의 불안은 배로 늘어난다.
카프리 별장에선 영화 <오디세이>에 대해 서로 추구하는 면이 다른 세 사람의 의견 마찰이 시작된다.아주 현실적인 제작자 바티스타는 히트작을 만들길 원하며, 감독 레인골드는 프로이트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으로 심리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리카르도는 영화를 통해 타락하는 세계를 희석하고 싶어한다.
결국 리카르도는 바티스타가 추구하는 영화를 따를 수 없고 레인골드가 원하는 율리시스와 페넬로페의 심리에 자신과 에밀리아의 상황이 일치되는 것을 느끼며인정하고싶지 않은 마음에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돌려 말했다.
... ...
남을 위해 일하기 싫어. 날 위해 일하고 싶어.
... ...
거짓이라는 느낌보다 더 나쁜 건,
침착성과 합리성이라는 가면 아래 숨죽인 모순된 감정이었다. -p233-
그렇구나.
에밀리아에게는 나도 바티스타도 중요하지 않구나.
그녀에게 중요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기 집을 갖는 것이구나.
그래서 아무 걱정없이 오래 살 수 있는 집만 있으면 되겠구나.-p277-
같이 로마로 돌아가자는 리카드도의 말은 따르지 않고
로마로 가는 바티스타를 따라 에밀리아는 리카르도만 남겨두고 떠난다.
그리고 리카르도는 잃어버린 아내, 너무도 생생한 에밀리아의 환상을 쫒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