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은
안녕하신가영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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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타클한 사운드가 빵빵 웅장한 음악보다

조곤조곤 옆에서 속삭이는 촉촉한 목소리를 찾게 되는 건,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줄줄이 펼쳐지는 소설보다

나도 겪고 옆 사람도 겪었을 것 같은 일상 속의 단편 수필들에 마음이 끌리는 건,

베개에 머리를 대고 딱 3초만 있으면 잠에 꼬로록 빠져드는 날 사이사이에

앞으로 뭐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몸을 뒤척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고리를 연결 짓는 밤을 보내는 건,

그건 아마도 내가 조금은 식상한 어른으로 살고 있다는 뜻일 테고

또한 그건 아마도 내게 되새김질할 기억들이 많아졌다는 뜻일 테다.

그녀의 그 밤들에 나 또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내게 문래동은 스물 일곱의 기억이다.

사과 맛이 나는 마늘이 듬뿍 올려져 있던 촉촉한 치킨과

살을 곱게 바른 닭다리에 매콤한 양념을 올려 숯불에 구운 닭갈비를 먹었던 곳.

그리고, 양파가 잔뜩 올려진 바삭바삭한 깐풍기를 먹자는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한 곳.

몇 번이나 얘기하던 그 깐풍기를 먹지 못했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부 닭에 관련이 되어 있네, 그렇게 닭살 돋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거실에 걸려있는 커다란 가족 사진 빈 공간을 톡톡 두드리며

언젠가 여기가 네 자리겠네하고 씨익 웃는 그 눈을

그 때 나는 순식간에 외면했던 것 같다. 아무 말도 대답한 기억이 없으니까.

그렇게 늘 그 마음들을 부담이라 여기며 외면했었을까.

연필, 나는 연필을 좋아하는데 사실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연필로 글씨는 쓰는 것보다는

커터칼로 연필을 서걱서걱 깎아내는 그 시간을 좋아해서

좀처럼 연필심이 줄지 않는 날에는 이면지를 꺼내고 마치 데생 연습인 척 색을 칠한다.

그렇게 한참 칠하다 연필심이 뭉툭해지면 손을 떼는데

그 때 종이에 닿는 손바닥이 검게 반짝이는 부분이나

가운데 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가 빨갛게 움푹 패인 부분이 나는 마음에 든다.

아마 나는 조금 때가 묻고 상처가 나고 울퉁불퉁한 걸 멋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리고 포춘쿠키,

이십 대의 나는 제법 운을 믿었던 것 같다.

종종 친구들과 타로 점이나 신년 운세를 보러 가곤 했는데

연애나 공부, 그런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듣고 또 까르르륵 웃었었다.

두어 번인가 연인과 궁합을 보러 간 적도 있다.

4월에 새로운 인연이 들어온다는 말이면 괜시리 마음이 울렁거리고

시험에 나와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는 색의 속옷을 입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장난 삼아 보는 오늘의 운세도 보지 않는다.

제법 연이 잘 맞아서 크게 다툴 일이 없을 거라는 연인과는 헤어졌고,

시험 성적은 공부한 만큼 나오는 거고,

인생의 어떤 것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거나, 좋은 그림 한 점, 공연 하나를 보는 게 낫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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