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밤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
스탕쥔 엮음, 오하나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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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는 나를 재우기 전이나 한가로운 주말 아침이면

나를 안고 그보다 더 어릴 적의 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가 세탁기를 앞으로 다 끌어내고 베란다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청소를 다 하고 세탁기를 다시 밀어 넣으려고 해도

암만 해도 세탁기가 들어가지를 않는 거야.

뭔가 이상해서 세탁기 뒤를 들여다봤더니

아니 글쎄 네가 거기 끼어서 배시시 웃는 거 아니겠니.

아마도 네 딴에는 그게 숨바꼭질인 줄 알았나 보지?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그러다가 찍찍 창자가 터지면 어쩌려고

하루는 네가 아파서 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들어오는데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늘어져서 자더라고.

몸이 흐물거려서 업고 오는데 무척이나 힘들었어.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내려놓자마자 반짝 눈을 뜨더니 노는 거 아니겠니?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고 있었더니만

처음에는 슬렁슬렁 말을 타다가 점점 신이 났는지

나중에는 손가락으로 하늘까지 찔러대면서

! !” 소리를 내며 땀을 뻘뻘 흘리며 놀더라.

그렇게까지 재미있게 말을 타는데

그래, 앓아 누워있는 것보다 저게 낫겠다 싶더라고.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것들과

그 이야기를 할 때의 엄마의 행복한 감정이 버무려진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은

바쁜 엄마가 나를 안고 있는 가장 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많이 펼쳐보아 닳아버린 동화책 같은,

전적으로 엄마에 의해 왜곡되었을 그 레퍼토리를 따분해하면서도

킁킁거리며 엄마의 살갗냄새를 맡곤 했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잠들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이야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내용이기 보다는

그걸 이야기해주는 사람의 낮은 목소리와

나를 안아주는 그 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옛날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느닷없이 호랑이가 어흥-하고 나타나고 도깨비가 쿵쿵거리며 골목 끝에서 걸어오는

허무맹랑한 그 이야기가 치밀한 서사구조를 가졌을 리 없다.

그래도 번번히 꺄악 소리를 지르며 파고들 수 있는 그 할머니의 품이 있었기 때문에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즐거운 기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흥미진진한 사건이 일어나기 보다는 그냥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들이,

지금 당장 숨막히는 아픔이기 보다는 조금 지나 무던해진 그 시간들이

잔잔한 독백처럼 툭툭 내려놓는 그들의 삶을 읽는 것이

마치 엄마나 엄마의 엄마가 들려주던 그 이야기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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