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번역가로 변신한 정역씨 - 영상번역에 빠진 직장인 이야기 먹고살기 시리즈
최시영 지음 / 왓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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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라면 젬병이다. 알코올의 도움을 빌려서 외국인 친구들과 신나게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알코올이 사라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기에서 전치사는 뭐가 들어가야 되는 거지? 시제를 맞춰야 되는 건가? 내 영어가 너무 엉망진창이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엉망진창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지레 겁을 너무 많이 먹어 목구멍에서 말 한 마디 나오는 게 어렵다.

외국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번번히 이번에는 무조건 영어 실력을 키우리라 마음먹지만 이래저래 핑계가 되어줄 만한 바쁜 일들은 쉼 없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면 다음 여행이 될 때까지 내 영어는 긴 잠을 가만가만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내가 영상번역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하게 내가 번역가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영상 번역가 입문서를 읽은 이유는, 내가 외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의욕이 최고조인 것을 첫째로 꼽을 수 있다. 문장의 5형식부터 시작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드라마나 영화, 뉴스를 통해서 영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매체를 다룬 책에 관심이 생겼다.

더불어, 나는 같은 대사나 노랫말이라도 누가 번역하는가에 따라 감정의 정도가 천지차이라는 것을 안다. 너무 멋있는 영화 속 명대사를 옮겨 적어놓고 싶을 때면 인터넷 서핑을 주로 이용하는 편인데, 막상 영화에서 들었던 그 느낌이 아닐 때가 많다. 찾고 찾아도 똑같은 감정이 생기지 않아 대충의 문맥만 따온 채 내 마음대로 문체를 바꿔서 적었던 적도 있다.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가 미친 듯이 멋있는 남자로 한참이 지나도 가슴 설렐지, 아니면 그저 우물쭈물 느려터진 신사로 남는지는 그의 연기력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번역의 맛 또한 중요하다.

팝송의 가사도 그렇다. 나는 존 레논의 가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문법적으로는 알아내기가 어려워 노랫말 역시 블로그를 검색할 때가 많다. 때로는 한 편의 낭만적인 시가 되어 읽히는 반면, 어떤 글을 보면 영시에는 역시 직설적인 표현이 많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여행을 다녀보면 날씨와 사람이 관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똑같이 유명한 명소를 다녀도 그 날의 날씨가 우중충하다면 , 생각보다 별로네.’라는 잔상이 남고 맑고 화창한 날에는 인생샷이 남는다. , 같이 간 사람이 ! 진짜 예쁘다!’고 감탄하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나 예쁜 걸 봤다는 감정이 벅차 오르고, 심드렁하게 , 별로네. 내가 지난 번에 갔던 데가 훨씬 크고 화려했어.’라고 말하면 에잇 오늘은 그냥 술이나 먹자 싶은 기분이 든다.

내가 생각할 때는 번역가라는 것이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잘 짜인 극본과 출중한 연기가 있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이 외국산이지 않은가. 그것을 어떻게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선보일지는 번역가의 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어떤 관점에서 영상을 이해하고, 어떤 문체를 선택해서 어떤 인물을 만들어낼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려있다. 영어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를 읽으며 인물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런 번역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입문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너무 기합이 세게 들어가서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소설의 형식을 빌어 가볍게 툭툭 한 걸음씩 옮기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특히 여러 가지 음식을 사이사이 끼워 넣어 전달하니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고, 직장 생활과 함께 듣다 보니 (내가 직장인이어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심리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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