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화가 이중섭 - 미술계를 뒤흔든 희대의 위작 스캔들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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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이메이르의 그림을 나치에 팔아먹은 혐의로 법정에 선 한스 반 메이허런은 그가 팔은 그림은 자신이 그린 위작이라고 증언한다. 판사, 건사, 변호사, 정부 관료들 모두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그는 기막힌 솜씨로 모사해냈다. 그는 복역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페이메이르의 진품이라고 여겨지는 30점이 남았다. 그러나 이 중 몇 개가 진짜인지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가의 혼이 들어있는지 아닌지를 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한국의 피카소라 알려진 이중섭의 그림 역시 걸작과 위작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당장 먹고 살 궁리밖에 할 수 없던 곤궁한 한국 국민들에게 예술이란 그야말로 예술나부랭이로 쓸모없는 일이었다. 당시 정권과 그 정권이 유지됨으로 인해 잇속을 챙길 수 있는 집단에서는 돈이 필요했고, 전쟁 물자로 큰돈을 벌은 일본은 이중섭의 그림이 필요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이중섭의 그림으로 한 몫을 챙기기 위해 그의 그림을 모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중섭의 제자라 나서며, 이중섭의 그림을 똑같이 그릴 줄 알며, 그의 상처두성이인 인생을 직접 느껴보고자 애쓰는 이허중이 있었다. 이허중은 이중섭과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이로, 미술학도였던 그를 아끼고 보살펴주었던 이중섭을 진심을 다해 존경하고 사모했다. 그의 필적을 따라 발길을 움직이고, 그의 생각을 이해하려 애쓰며, 그의 삶 그 자체를 좆았다. 소설은 사실과 허구 사이를 기묘하게 옮겨 다녔다. 당시 상황에 대한 생생한 설명은 마치 현실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중섭의 그림이 비싼 값에 팔린다는 말에 현혹되었던 당시의 사람들이나,

그를 단지 소를 그리던, 조울증을 앓던, 요절한 화가라고 기억하는 현재의 사람들이

과연 위작 작가인 이허중의 행동이 유죄인지 아닌지를 논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가 이중섭 화가의 작품을, 인생을 사랑하고 아끼고 지키려 했던 만큼보다 더 크게 그 분을 아껴준 사람만이 그의 행동을 판가름할 수 있으리라.

 

다만, 나는 그가 가난한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아비였다는 것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춘화를 그리고 간간히 극장의 간판을 그리는 돈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 부둣가에서 짐을 나르는 일용직 삶을 사는 그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당최 있기는 했을까. 예술로 먹고 살기는 예나 지금이나 편편치 않은 세상이다. 유명한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 고스트라이터였다는 사실이 적지 않게 들리기도 하다.

어린 남편이허중의 삶을 보며 얼마 전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한 해 250명이 넘는 아가들이 버려지는 베이비박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가를 낳은 지 한 시간 만에 하혈을 하며 제 자식을 버리러 걸어왔단다. 제 몸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아픈 줄도 모르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리고 모텔 가운에 쌓여진 아가들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그림을 완벽하게 모사할 수 있는 재능이 있고, 또 그들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아온다면 그들 중 제 자식을 포기하고 양심을 챙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가짜 이중섭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죄인이다. 그러나 그가 거짓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가난이라는 죄가 먼저 그를 찾았다. 그는 죄인이지만, 훌륭한 아빠다.

물론 판단은 독자 개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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