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짓의 행복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 사람들
크리스 길아보 지음, 고유라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언제나 마음속에 이타가를 간직하라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당신의 최종 목표다

하지만 여행을 서두르지 마라

여행은 여러 해 지속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당신이 늙었을 때 그 섬, 이타카에 정착하는 것이 좋다

길 위에서 얻은 것을로 풍성해진 당신이

이타카가 부를 제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당신이

이타카, 콘스탄틴 카바피

 

가만가만 눈을 감고 생각을 해보자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다른 일들,

조금 더 멀리에서부터 보면 내가 전공한 학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무엇 하나 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은 없다.

상황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어서. 라는 핑계 뒤로 몸을 숨겨보지만

어찌되었든 내 앞에는 상상하는 만큼의 갈래가 있었고 나는 그 중에 하나를 집었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후회하고 탓하고 절망했다.

이렇게 뻔한 사람으로, 남들과 똑같은 일과로 사는 것이 못마땅했다.

좀 더 그럴싸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다달이 부어야 하는 적금에 발목을 담근 채 서러운 일도 참아 넘기는 일이,

애정만이 전부가 아닌 사랑을 하고 있는 하찮은 연애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목표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내가 선택했다.

 

마음속으로 나는 끝없이 이상을 추구했지만

현실의 바닥에 발을 꼭 붙이고 지냈다.

그것을 답답하다고 여기면서도,

그런 내 모습이 조금도 멋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오십 명이 넘는 멋진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그들이 멋있고, 그들의 결단력이 부러웠고, 그리고 나 또한 당장 길을 떠나고 싶었지만

진심을 다해 정말로

아프리카의 짐꾼들 사이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몇 시간 눈을 붙이거나

백만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천만 번의 셔터를 누르거나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15년을 지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이 없다.

 

다만 나는 잠깐, 그러나 일반적인 도시의 직장인들보다는 조금 더 길게

현실의 바닥에서 점프를 하기로 했다.

퀘스트의 조건이 그러하듯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뚜렷한 이유를 댈 수 있는 그런 삶이

내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지친 퇴근길, 직원들이 먹고 남은 반찬들을 들고 와 혼자 사시는 동네 할머니 댁에 놓아드리는 일.

몇 번을 다시 가서 봤던 옷을 사는 대신 통장에 차곡차곡 넣어 한 달의 유럽여행을 계획하는 일.

한창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는 대신 논문을 뒤적이며 헨젤과 그레텔의 심리에 대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뇌하는 일.

그리고,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일.

 

한 푼 돈이 되지 않는 일까지 붙들어 매며 살고 있는,

재미없고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이

근사하고 장대한 퀘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멋진 삶을 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여성인 것이다, 나 또한.

 

로라처럼 나만의 긴 항해를 개척해나가기로 했다.

낯선 새를 관찰하는 피비 스넷싱어의 아침처럼 기대에 찬 하루를 시작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우 장처럼 태연한 거절을 맛보는 그런 삶을 살기로.

 

조니의 엄마가 내게도 이야기 해준 듯 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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