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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산해의 ‘길가메쉬(또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의 신화이다. 아트라하시스(Atrahasis; 기원전 1635년)의 서사시와 더불어 우트나피쉬팀의 홍수 이야기(판본 11)는 히브리어 성서의 창세기 6-9장에 등장하는 홍수 이야기와 흡사한 점으로 인해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중역이 아닌 원전 번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그래서 이 책을 접하기 전부터 내용과 구성에 기대를 많이 한 건 사실이다. 본 서평자는 독자의 대부분이 고대 근동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저자가 어느 정도로 잘 고려하고 설명을 해 놓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수메르의 도시국가인 우루크의 왕인 길가메시에 대한 묘사로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길가메시는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인 우루크에서 가장 힘이 세어서 다른 이가 덤비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한탄하자 신들은 창조의 여신인 아루루를 불러서 길가메시에 대적할 만한 힘을 가진 엔키두를 창조하게 한다. 엔키두는 길가메시가 미인계로 보낸 신전의 여인 샴하트에 반해서 그녀와 함께 지내게 된다. 엔키두는 길가메시의 오만을 참지 못하고 우루크로 그와 대면하러 간다. 우루크에서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서로 겨루게 되었고 길가메시가 먼저 무릎을 꿇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는 삼목산에 살고 있는 훔바바를 죽이고 싶다고 엔키두에게 이야기하면서 그와 함께 가자고 한다. 엔키두와 우루크의 장로들이 만류하지만 길가메시는 이를 무시한다. 길가메시는 태양의 신 샤마쉬에게 기도한 뒤 엔키두와 함께 길을 나선다.
훔바바와의 싸움에서 둘은 승리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 후 하늘과 땅의 여왕이자 전쟁과 사랑의 여신 이쉬타르가 길가메시에게 반해서 청혼을 하지만 길가메시는 모욕을 주며 거절한다. 이쉬타르는 하늘의 황소를 풀어서 길가메시를 죽이려고 하지만 엔키두가 황소를 죽인다. 엔키두는 그로 인해 신들의 저주를 받아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죽음을 슬퍼하며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그 뒤 길가메시는 삶과 죽음에 대해 묻기 위해서 영생자인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방황하게 되고 신들의 정원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여인숙의 주인인 씨두리로부터 우트나피쉬팀의 뱃사공 우르샤나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르샤나비의 도움으로 죽음의 바다에 도착한 길가메시는 결국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죽음은 누구도 알수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트나피쉬팀은 그가 강 입구에서 살게 된 이유를 길가메시에게 설명해주면서 홍수에서 살아남았던 이야기를 해준다. 길가메시는 우르샤니비와 함께 우르크로 귀환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표준판은 엔드류 조지(Andrew George)가 펭귄 클래식으로 출간한 것(아래의 사진)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김산해의 ‘길가메쉬 서사시’와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김산해 앤드류 조지
1. 영웅 길가메쉬 왕 판본 1
2. 엔키두의 창조
3. 엔키두의 개화
4. 길가메쉬의 꿈
5.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만남 판본 2
6. 훔바바 살해 음모
7. 닌순의 기도 판본 3
8. 삼목산 여행 판본 4
9. 훔바바와의 싸움 판본 5
10. 후와와의 죽음 판본 6
11. 이쉬타르의 청혼
12. 길가메쉬와 하늘의 황소
13. 길기메쉬와 아가의 전쟁 12 토판에 없는 부분
14. 엔키두의 악몽 판본 7
15. 엔키두의 죽음 판본 8
16. 길가메쉬와 엔키두의 저승 여행 12 토판에 없는 부분
17. 길가메쉬의 방황과 전갈 부부 판본 9
18. 씨두리의 충고 판본 10
19. 뱃사공 우르샤나비의 도움
20. 우트나피쉬팀과의 조우
21. 우트나피쉬팀의 홍수 이야기 판본 11
22. 왕의 귀환
간략하게 위의 비교를 정리해보면 김산해의 ‘길가메쉬 서사시’는 엔드류 조지의 표준판본과 비교해서 13과 16장에 12 토판에 없는 부분을 추가로 수록하였다. 그리고 판본 1이 김산해의 책에서 1장에서부터 4장에 해당하는데 판본 1을 김산해는 지나치게 소제목으로 나누었다는 느낌이 있지만 내용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가독성의 측면에서는 앤드류 조지의 책에 점수를 더 주고 싶은 건 사실이다. 참고로 범우사에서 출간한 N.K. 샌다즈의 ‘길기메시 서사시’는 1960년에 출간한 책으로 비교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미 엔드류 조지의 책이 가장 최근의 표준 문헌을 담고 있는데 오래된 책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어서이다.
참고로 앤드류 조지의 ‘The Epic of Gilgamesh’에서 첫 번째 천년기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서 표준으로 사용되던 아카드어로 쓰여진 버전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고전적인 형태의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현존하는 73개의 문헌들을 기본 텍스트로 사용하고 나머지 빠진 부분은 다른 문헌과 심지어 히타이트 버전까지 사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판본(Tablet) 1-11로 구성이 되어있다. 마지막 판본 12는 학자들이 길가메시의 서사시에 원래 속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판본 1, 6, 10, 11은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지 않는 상태이다(Andrew George, The Epic of Gilgamesh, 28페이지).
김산해의 ‘길가메쉬 서사시’의 단점을 한가지 살펴보자면 잘못 알고 있는 성서학의 지식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재 성서학계에서 족장시대의 역사성에 의문을 갖는 상황에서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아브라함의 출생을 4127년 전이라고 한 것은 언제적 시대에 어느 학자의 이야기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앤드류 조지의 책이 영어권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번역본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굳이 한국어 번역본을 찾는다면 김산해의 책이 현재로서는 비교적 무난하게 내용의 구성이 잘 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불필요한 양장판으로 인해 가격이 좀 부담스럽다는 것과 앤드류 조지의 책과 비교해서 내용이 처음 길가메시 서사시를 접하는 이에게는 다소 산만해 보일수도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한국에서도 좋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번역본을 읽을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