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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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도서


1. <우리의 투어>, 강보라

프리랜서 노동의 불안과 상실감을 매우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공연 잡지 기자였던 ‘나’는 회사의 경영난 속에서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한 채 밀려나고, 복간 이후에도 홀로 복직 대상에서 제외된다.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억울한 해고’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가 조직에서 얼마나 쉽게 삭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후배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며 자신이 지워져가는 장면은 노동의 문제가 곧 존재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노무사 송엄지의 피곤한 모습과 제대로 밥조차 챙기지 못하는 노동 현실 역시 인물들의 처지를 거울처럼 비춘다. 회사는 복간되고 시스템은 다시 굴러가지만, 누군가는 끝내 복구되지 못한 채 밖에 남는다. 작품은 그 소외의 감각을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포착한다.

2. <방송 사고 경위서>, 권석

예능 산업의 화려함 뒤에 존재하는 불안정한 관계와 생존 경쟁을 블랙코미디처럼 풀어낸 작품이다. 생방송 사고라는 극단적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작품의 핵심은 사고 자체보다도 그 이전에 누적된 인간관계의 균열에 있다. 특히 PD 탄과 생계형 개그맨 남궁현의 관계는 방송계의 냉혹한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필요할 때는 이용되지만 끝내 무대에는 설 수 없는 궁현의 위치는, 업계 주변부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음에 꼭 출연시켜줄게”라는 탄의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공허한 약속이기도 하다. 작품은 방송이 ‘적당히 보여주고 숨기는’ 세계라는 점을 반복해서 드러내며, 결국 진실보다 무난함과 수습이 우선되는 시스템을 비판한다. 웃음을 만드는 업계 안에서 가장 절박한 사람들이 오히려 쉽게 소외된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남는다.

3. <이모라는 직업>, 김하율

웨딩 헬퍼라는 비교적 낯선 직업을 통해 돌봄과 서비스 노동의 보이지 않는 피로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혜는 신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움직이지만, 정작 자신은 검은 옷 속에 숨어 투명한 존재처럼 취급된다. 작품 속 “가장 진한 색인데도 검은 옷을 입는 순간 투명해진다”는 표현은 헬퍼 노동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특히 정혜가 평일에는 아이 돌봄 노동까지 병행하고 있다는 점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이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유나가 베일을 잡아당기는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언제든 평가받고 밀려날 수 있는 노동자의 불안정한 위치를 드러내는 계기이기도 하다. 작품은 화려한 결혼식 이면에서 누군가의 노동이 얼마나 쉽게 그림자 취급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4. <경희와 경희 아닌 것>, 박연준

노동이 개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경희는 무례한 상사와 불합리한 요구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오랫동안 장기계약직으로 일해온 엄마는 노동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은 이 두 인물을 대비시키며 세대마다 다른 생존 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경희가 명품 가방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연결짓는 장면은, 사회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쉽게 소비와 외형으로 평가되는지를 드러낸다. “난 비싼 인간이에요”라는 독백은 허세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함부로 취급당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외침처럼 들린다. 이후 성실하게 살아온 엄마마저 구조조정 속에서 밀려나는 전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노동 현실을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5. <퇴직금 돌려받기>, 성혜령

평범한 회사 업무처럼 보이는 일이 어떻게 한 사람의 윤리와 감각을 흔드는지를 현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문은 어렵게 들어간 정규직 회사를 지키기 위해 과지급된 퇴직금을 회수하는 일을 맡게 되지만, 점점 그 업무가 사람을 압박하고 상처 입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퇴사자 진해정이 “그 정도는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작품 전체의 핵심처럼 느껴진다. 회사의 실수를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와, 그 일을 수행해야 하는 현재의 노동자 모두가 결국 시스템 안에서 소모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작품은 거대한 악인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직장인들이 조직 논리 속에서 서로를 압박하게 되는 현실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불편하다.

6. <꾸밈없이 진심으로>, 정선임

기간제교사의 시선을 통해 노동과 생계, 그리고 ‘직업’의 의미를 조용히 질문하는 작품이다. 계약이 끝난 뒤에도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은 기간제 노동의 애매한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학교 안에서는 담임교사였지만 계약 종료 이후 그는 이미 조직 밖의 사람이다. 작품은 이런 불안정성을 직접적으로 분노하기보다, 해원의 삶과 대비시키며 더 복합적으로 바라본다. 새를 보기 위해 정규직 대신 불안정한 생활을 선택한 해원의 모습은 자유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위태롭기도 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은 결국 작품 속 모든 인물에게 향한다. 특히 생활기록부 속 상투적인 문장이 학생들의 개별성을 지워버리는 과정은, 제도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평면화하는지를 드러낸다. 조용하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7. <대타 세우기>, 함윤이

자전거 퀵 노동을 통해 도시의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감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태성은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며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속도감과 자유를 떠올리지만, 동시에 자동차의 위협과 모욕 속에서 왜 그 일을 떠났는지도 다시 깨닫게 된다. 작품은 자전거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 그 자체처럼 묘사한다. 차도 위에서 “꺼지라”는 듯한 경적과 욕설은 퀵 노동자들이 사회에서 어떤 시선 속에 놓여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황홀경과 공포가 동시에 존재하는 감각 묘사가 인상적이다. 좋아했던 일이 생계가 되는 순간 어떻게 위험과 불안으로 변하는지, 작품은 태성의 흔들리는 몸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플랫폼 노동 시대의 취약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8. <빈칸 채우기>, 이태승

공무원 사회의 관료주의를 다루면서도, 결국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승진 심사를 앞둔 ‘나’는 감사에 대비해 누락된 서명을 채우려 하지만, 그 과정은 단순한 문서 보완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과 삶을 다시 마주하는 여정이 된다. 특히 연구 참여자들을 찾아다니며 마주하는 각자의 현재는 생계와 시간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작품 후반부에서 승진 이후의 미래가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다는 독백은 인상적이다. 월급이 오르고 자리가 높아져도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감각은 오늘날 직장인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제목의 ‘빈칸’은 단순한 서류의 공란이 아니라,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삶의 공허함처럼 읽힌다. 잔잔하지만 묵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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