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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평점 :
도서명 :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저자 : 로베르트 발저 (배수아 옮김)
출판사 : 한겨레출판
발행 : 2024. 07. 10.
쪽수 : 400P
독서 기간 : 2024. 08. 02. ~ 2024. 08. 05.
첫문장 : 아침의 꿈과 저녁의 꿈, 빛과 밤, 달, 태양 그리고 별. 낮의 장밋빛 광선과 밤의 희미한 빛. 시와 분. 한주와 한 해 전체. 얼마나 자주 나는 내 영혼의 은밀한 벗인 달을 올려다보았던가. 별들은 내 다정한 동료들. 창백하고 차가운 안개의 세상으로 황금의 태양빛이 비쳐들 대 나는 얼마나 크나큰 기쁨에 몸을 떨었던가.
독후감
<작별들 순간들>, <불안의 서>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겸 번역가 배수아의 로베르트 발저 작품 번역판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42편의 중단편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어지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고집적이고, 약간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지 기대하게 된다.
"나는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첫번째로 수록된 단편 <시인>의 마지막 부분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는 주인을 잃고 용도가 사라진 물건들과 황금빛 저녁햇살이 보내는 축복의 미소로 가득 찬 방을 바라보면서, 나는 꼼짝없이 서 있었고 더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말없이 우뚝 선 상태에서 겨우 풀려나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삶이 내 어깨를 붙잡았고, 비범한 시선으로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살아 있었으며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순간처럼 아름다웠다. 조용히 나는 그곳을 떠나 거리를 나섰다.] 두 번째 이야기 <빌케 부인>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쓸쓸하면서도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도시 외곽에 방을 얻고, 그곳에서 만난 집주인 "빌케 부인"은 자신에게 이런 저런 생활할 때의 주의사항을 잔소리처럼 말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병에 걸려 죽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사실에 크게 슬퍼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 날 그녀의 빈 방에 들어가 그 공허함을 즐기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며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기괴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대본 처럼 두 등장인물의 대화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형식으로 쓰인 이야기도 있고, 등장인물 A가 B 인물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으로 쓰인 이야기도 있다. 모든 이야기가 2~10장 내외로 구성되어 있어서 차 안이나 길을 걷다가, 카페 등에서 쉬어가면서 읽기 좋았다. 그렇게 2~5편 정도씩 끊어 가면서 읽다 보니 생각보게 빨리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지난 겨울에 출간된 로베르트 발저의 에세이 <연필로 쓴 작은 글씨>도 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