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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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은, 우울치료제로 여행을 복용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더없이 넓은 동굴이고 또한 가장 작은 동굴이다. 그런 여행에서는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는다. 나 자신과도 더 친해지지 않는다. 그냥 나를 잘 모르겠고 내가 싫은 상태로 어딘가로 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냥, 동굴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게 전부다. (107)

대인관계에서 유일한 나의 철학은, 상대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캐묻지 않는다는 것 정도. 상대방이 처박힐 수 있는 골방 하나쯤은 허락하고, 그곳에서 ‘너무 오래‘ 나오지 않는 것 같으면 억지로라도 부수고 들어가버린다. 그쯤 되면 자신의 날숨으로 탁해진 공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오지랖이 훨씬 위로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신이 혼자만 있고 싶어 하는 인간이었다면 날 애초에 좋아했을 리가 없잖아! 라고 주장한다. 팔을 잡고 거리를 걷거나 나란히 앉아서 각기 다른 일을 하며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대개의 인간은 훨씬 ‘덜 부정적‘이 된다. (115)

지금은 더 이상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는 친구인데, 근사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친구의 활약을 멀리서 지켜볼 때면, 종종 그날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리고,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없이 충만했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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