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머신건스
미나미 나쓰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중2병'이라는 말이 있다. 위키피디아는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빗댄 언어로, 자아 형성 과정에서 ‘자신은 남과 다르다’ 혹은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말이라고 비교적 우아한 정의를 내려주었고, 한 기자님은 '사춘기의 물이 오를 대로 올라 나타나는 증상, 부모가 보기에는 그저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그런 양태'라며 그 속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주었다. 우아한 정의든 적나라한 정의든, 어쨌든 나 역시 중2병을 꽤나 심각하게 앓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 같고,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은 다 시시해 보이고, 남몰래 품고 있는 우월감까지. 지금 생각하면 어후, 싶다.

 

<헤이세이 머신건스>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중2병 환자'이다. 심지어 이 작품을 썼을 당시 미나미 나쓰도 중학교 2학년! 헛 그런데 이 작가, 세다. 날카롭다.

 

다툼과 화해의 규칙적인 나열이 마침표도 쉼표도 없이 논스톱으로 하염없이 이어지는 듯한 그런 관계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있는가 하면, 말로만 푼 척하고 꽁해 있거나 응어리를 질질 끌 때도 있다. 단락도 없고 정돈되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는 마냥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이 되어 신나는 일만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부를 하지도 않는 주제에 그쪽으로 욕심을 냈고, 지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뇌로 밑도 끝도 없이 그것만을 열심히 좇았다. 어렸다. 어리석었다.

큰 소리로 외치는데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몸이 떨린다. 어깨 주위가 싸늘해진다. 그리고 나는 약간 휘청거린다. 병도 약도 주지 않는 얼간이들이 나를 소외시켜 평화의 테두리에서 튕겨낸다. 롤러코스터가 급속도로 하강하면, 공포는 백만 배로 커진다. 전기충격을 받을 때와 같은 비명에 아비규환은 덤이다. 단번에 하늘로 치솟는다. 현실로의 귀환. 다녀왔습니다.

어딘가 일그러져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중 새엄마가 있건 등교거부 경험이 있건, 그 정도야 큰 사건도 아니거니와 특별히 남들 인생과 다르다고 할 수도 없아. 그럼에도 사람들이 별난 눈으로 보는 이유는 그저 남의 불행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일 뿐이지, 사실 속으로는 나르르 일상에 드러난 전형 혹은 하나의 샘플 정도밖에 여기고 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의 내면 역시 크지는 않더라도 사사롭고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로 일그러져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하고 아빠의 재혼 문제로 파닥파닥대로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면 딱 저 나이 때 아이답다 싶은데 가끔, 아니 꽤 종종 저렇게 서늘한 문장들로 깜짝깜짝 놀래킨다. 자기가 불쌍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과는 별개로 꽤나 객관적인 시각을 가졌달까. 나는 열다섯 살 때 저런 생각 할 수 있었는지 몰라. 저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 싶다 으하핫.

 

아무튼 중학교 때 소설다운 소설을 써냈다는 것은 역시 대단. 성인이 되고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던데, 저렇게 단단한 소녀가 어떤 작가로 자라났을지, 어떤 세계를 보여줄지도 기대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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