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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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쪽의 문장은,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으로 골라두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내 마음 안에도 어딘가에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망이 실은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갖고.


128쪽과 133쪽은, 들키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정확히 표현되어 있어 골라두었다. 들키고 싶지 않다? 무엇을? 저 문장에 무방비상태로 찔린 것처럼 잠깐, 그보다는 좀더 오래 멍해져 있을 만큼, 며칠 후 다시 곱씹으면서도 어김없이 목구멍이 아프게 조여오고 울음이 나올 만큼 아직도 마음속 크고 중요한 자리를 저런 생각들에 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애틋하게 남을 작품은 아마 <이모에게>일 텐데, 정작 거기서는 어떤 문장도 골라두지 못했다. 아마 내가 어릴 때 가장 마음놓고 어린아이일 수 있던 상대를 "이모"라고 불렀다는 사실, 그리고 작품 속 이모가 내가 되고 싶은 미래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제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 P102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 P115

서운하다,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나, 상처받았다, 예전의 다희라면 그렇게 말했으리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다희에게 그녀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 P119

다희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는 말도.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태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애초에 그녀는 깊은 이야기를 할수록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지만 다희가 그녀로 하여금 말하게 했고, 그 사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녀는 그중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P120

그때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는 게 내 인생을 가장 합리적으로 감당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아. 나는 내게 벌어진 많은 일들을 모두 그 이유로 쉽게 설명할 수 있었어. - P128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썼지. 어린 시절부터 오래도록 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느끼며 자라서인지 나에게는 내가 결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사람, 멸시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거든. 그럴수록 나는 남들에게 더 맞춰줬고 남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고민했어.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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