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만드는 법 - 원고가 작품이 될 때까지, 작가의 곁에서 독자의 눈으로 땅콩문고
강윤정 지음 / 유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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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분야의 독자가 아니었던 나의 취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들어야 하는 책이 어떤 책인지, 누가 왜 사서 읽을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합당한 판단을 하는 사람,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편집자였습니다. - P12

처음엔 이 과정의 지난함에 쉽게 지쳤다. 넘어야 할 산으로만 보였다. 내 생각엔 내 생각이 맞으니까. 그러나 공동의 목표는 이 원고가 오랫동안, 가능한 한 많이 사랑받는 책이 되는 것. 이제는 설득하기 위해 스스로 명분을 쌓아 가는 과정에서도 배우고, 상대에게 설득당하면서도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편이 정신건강에 좋고 일을 유연하게 해 나가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다. 성향이 각각 다른 작가와 매번 새로이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니까. 잊지 말자. 작가는 내 뜻을 관철시켜야 하는 상대가 아니다. 편집자는 작가의 러닝 메이트다. - P38

교정교열 한 내용을 작가가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다음 문제이다. 우선 내 앞에 교정지가 있다면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 P42

설령 작가가 언짢아할지라도 내 작업물이 ‘틀린’ 것은 아니니 위축되거나 잘못했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국내문학의 교정교열 내용의 최종 판단은 대개 작가가 한다. 원고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저작권자인 작가에게 있다. 그러니 교정교열을 보며 마음에 걸리거나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과감하게 표시하여 작가가 고민해볼 여지를 많이 남기는 게 좋다. - P44

요컨대 독자는 책의 내용을 모른 채 책을 집어 구매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제목은 책의 만듦새에 참 중요하겠다. 내용보다 먼저 읽는 글이 바로 제목이니까.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조금 더 과하게 얘기하자면 ‘내용보다’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편집자에게는. 좋은 원고를 쓰는 것이 저자의 몫이라면 그것을 독자가 집어 들고 싶은 책으로 만드는 것이 편집자의 일이니까. - P68

어떤 경우에는 내가 디자이너의 스타일에 맞추고, 또 어떤 경우에는 디자이너가 내 스타일에 맞춰준다. 내가 그리는 책의 꼴이 명쾌할 때는 디자이너가 나에게 맞춰 줬으면 싶고, 내가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는 디자이너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줬으면 싶다. 물론 매번 뜻대로 되진 않는다. - P81

이럴 땐 서점에 간다. 표지 시안을 들고 책이 놓일 매대로 가는 것이다. 그러고 매대 전체를 눈에 담아 본다. 시안 한 장을 들고 볼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여러 시안을 올려 놓고 매대 전체를 사진 찍는다. - P91

단순히 내 눈엔 그게 더 예뻐 보인다 같은 말로는 좁힐 수 없는 문제의 해답을 이 책이 궁극적으로 놓일 공간에서 찾아보는 것. 꼭 한번 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 P93

일단은 눈에 보여야 산다. 제일 먼저 띠지를 버리는 독자도 많다. 그러나 그것으로 띠지의 역할은 충분하다. 띠지를 둘러 표지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생각한다면 그 ‘완성도’란 무엇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자. - P94

그러므로 이 책의 표지 문안 가운데 편집자인 내가 쓴 카피는 딱 하나밖에 없는 셈이다. 표지 문안인데 어떻게든 카피를 만들어 넣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아도 된다. 카피를 모두 걷어 내 보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확신이 든다면. 본문에서 고른 문장 역시 편집자의 선택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문학작품은 그 작가의 문장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잊지 말고, 그것을 잘 고르고 배열하는 데 더 집중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 P115

아무리 근사한 책이라도 독자가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이럴 때 편집자가 하기 쉬운 선택은 다음과 같다. 마케팅을 아쉬워하고, 회사의 규모와 그에 따른 홍보비 책정을 아쉬워하고, 독자의 눈이 어둡다고 아쉬워하고, 출판 시장이 영세하다고 아쉬워하는 것. 그러나 아쉬움과 원망으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또한 여러분도 나도 알고 있다. - P134

기획 단계에서 편집자는 아이템 하나를 쥐고 분야, 저자군, 예상 독자, 시장을 다방면으로 분석한다. 어떤 책은 머릿속으로 굴렸을 땐 그럴듯해 보였으나 ☞그 책을 쓰기에 적합한 저자가 없거나 ☞읽을 사람이 적거나 ☞시장에서 유사 도서의 판매가 예상보다 안 되었던 것으로 판명 나 일찌감치 버려진다. ☞잘 쓸 만한 저자가 있고 그 저자가 섭외 가능하며 ☞예상한 기간 내에 집필이 가능한 책, ☞독자에게 유익하며 ☞가능한 한 많은 독자의 관심이 가닿을 만하나 책, ☞그러면서도 내가 속한 출판사의 색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책이라는 다섯 가지 울타리를 크게 쳐 둔 뒤, 그 안에서 ‘누가/왜 지금/다른 책이 아닌 바로 이 책을 읽을까’에 대해 답을 적어 나간다. 그 답이 가장 객관적이고 분명한 기획이 좋은 기획, 책이 될 만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 P152

내가 맡은 책이 내 취향과 안 맞는 책이라는 건 전혀 문제도 되지 않고 문제가 되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원하는 책만 할 수 없고 그건 연차가 낮을 때에 더욱 그렇죠. 어떤 원고를 맡았건, 그 원고에 오류가 없도록 다듬고 좋은 점을 발견해 그것이 묻히지 않고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것만 고민해도 벅찹니다. 물론 그 책을 만드는 동안 덜 즐거울 순 있습니다.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취미가 아니고 일이니까요.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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