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자라난 주드의 외로움은 살아 있는 생물이 돼버렸고,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지만, 그가 숫자들을 가지고 놀 때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숫자는 그에게 구술이나 양철 병정 이상의 장난감이었다. 숫자는 막대사탕이나 자두 이상으로 그의 입안에 침이 고이게 했다. 세상은 엉망이었지만, 숫자는 예측 가능하고 정중하고 질서가 있었다. - P38
주드는 그때 깨달았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 해도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 깨달음을 뼈에 새겼고, 그때부터 모든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을 생각했다. - P43
서른 살이 됐을 즈음 주드는 지쳐 있었다. 그는 교가에, 그것들의 인장강도에, 그 아래로 흐르는 차가운 강물에 마음이 끌렸다. 피부 아래 멈이 맺히는 것처럼, 생각들 아래 결심이 굳고 있었다. - P46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목덜미에 머리를 묻고, 거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내쉬고 그녀의 사랑과 끈적거리는 여행의 흔적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굶주린 어둠을 또 한번 모면했음을 깨달았다. - P60
모든 게 벅찼다. 다가올 세월을 보내며 그녀는 이 고요한 나날을 기억할 것이다. 한 해 두 해 서서히 시간이 끔찍한 것에서 견딜 만한 것으로, 이어 더 나은 것으로 옮겨갈 때 이 아름답고 온화한 나날을 가슴속에 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벼려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 울음이 터졌다. 잉크가 물속에서 퍼지듯 못된 소망이 그녀 안에서 퍼져나갔다. 그만큼의 세월 전에 소녀와 동생이 그 섬에서 계속 머물렀기를 바라는 소망, 그들이 굶주림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마침내 햇살과 먼지가 되었기를 바라는 소망. - P82
내 아이들. 인류 문화가 길러지고 있는 두 배양접시가 무한히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엄마가 된다는 것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성의 구분으로 떠맡겨진 듯한 것은 뭐든 모욕으로 느껴졌기에 그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 P93
그녀는 자신의 모든 실패를 독서라는 행위 안에 묻어버리는 것처럼, 이 부분에서의 실패도 묻어버린다. - P206
그녀는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존재다. 그녀 역시 자신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다. - P209
또 뭐가 사라졌을지 그녀는 궁금했다. 괴테, 셰익스피어, 몬탈레. 태양이 그 전부를 표백시켜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굶주림이 그것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건 청소라고,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아름다운 단어들이 그녀를 구원할 수 없다면, 그 단어들을 잃는 것이, 또한, 최선이었다. - P222
청소는 그녀가 다른 삶의 시간에서 익숙하게 느꼈던 감각을 일깨웠다. 책 읽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때의 감각을. 단어들은 삶에서 깎아낸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창문을 닦아 완벽히 깨끗하게 만들고, 도기로 된 변기와 세면대를 닦고, 타일이 이처럼 반짝거릴 때까지 부식성 화학품을 바른다. 그런 일을 하고 있으면 그녀는 자신에게서 분리될 수 있었다. - P231
의사가 칼을 찔러넣을 때 그녀 안에서 견디기 힘들 만큼의 누르는 힘이 느껴졌다. 그 순간 오래된 공포가 되살아났다. 어둠, 자신이 상실된 느낌, 뱀의 송곳니에 물렸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팰머토 때문이었던 발목에 벤 상처, 목덜미에 뜨겁게 느껴지던 나쁜 영의 숨. 그 순간 그녀는 어둠 속에서 은은한 불빛을 보았고, 다시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휘청휘청 돌아갔다. 우리를 다른 뭔가에 묶어주는 끈은 얼마나 섬세하고 미묘한가. 어둠 속에서 뭔가가 반짝거린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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