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남겨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안희주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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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춘기 때부터 아빠를 미워한 데에는 엄마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엄마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남에겐 할 수 없는 말을 딸이니까 나에게 했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빠를 향한 엄마의 미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건 사실이라고. 나도 아빠에게 잘하고 싶지만 생각처럼 안 된다고. 기분이 나쁘면 나도 모르게 아빠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고. 잊고 있던, 가라 앉아 있던 그 감정이 올라와 괴롭다고. 엄마가 지금 아빠와 괜찮아졌다고, 엄마가 아빠를 용서하고 이해했다고 그걸 나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고. 엄마, 아빠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직 아무렇지 않을 만큼 가슴이 괜찮아진 건 아니라고.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 P28

몇 년 전의 나는 아마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해침으로써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해침으로써 나를 더 많이 사랑해주지 않은 걸 후회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나를 아꼈던 사람들이,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 내가 언제 어떻게 떠나더라도 너무 아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64

나에겐 나를 해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 방법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지라도 일단 어떤 일이 생기면 생각은 곧장 날카로운 칼을 빼달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회사 일을 잘못 처리하면 내가 멍청해서, 모자라서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고, 다른 사람이 실수한 일에서도 내 잘못을 찾아내려 애썼으며, 게으르고 치열하지 않고 야물지 않은 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지를지 몰라 늘 전전긍긍했다. 도살장에 끌려나가는 소마냥 회사로 향할 때는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면 좋겠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일은 제자리걸음일 때는 계단에서 굴러 팔이라도 부러지면 좋겠다 생각했다. 누군가가 너무너무 미우면 그 사람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는 나를 먼저 죽였다. 유서를 써놓고 죽으리라, 너 때문에 내가 세상을 버린 거라고, 그 죄책감을 안고 평생을 불안하게 살아보라고, 칼에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통쾌해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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