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원 인간 - 그래픽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하는가?
폴 사어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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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위를 쳐다보지 말라고, 그러면 관광객 티가 난다고 말했다(마치 아버지 목에 걸린 카메라와 망원경은 전혀 관강객 티를 안 낸다는 것처럼). 그래서 데니스와 제프와 나는 시선을 길바닥으로 향한 채 쓰레기와 함께 바람에 날리는 것들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나 찿아보았다. - P57

박살난 레코드판들을 살펴보며 나는 더그의 어머니가 어떤 레코드판에 얼만큼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서진 파편이 작을수록 그 죄가 더 중함을 의미했다. - P60

지난 세월 스포츠 훈련을 통해 배운 것은, 무언가를 잘하려면 반복과 불편/통증이 필수라는 점이었다. 내가 가졌다고 생각했던 재능이 얼마큼이든 설령 그것이 부족하더라도 나는 끈질기게 노력하는 법을 알았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할 수 있는 한 오래 작업에 몰두했다. 내가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 P99

강의실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나는 마침내 학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디자인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다른 이들의 작품을 보았다. 이제 나도 내가 보는 것이 내 의견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큰 울림을 준 작품을 따라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물의 성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 P121

학교 과제와 실무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이었다. 고객의 존재는 진짜 마감을 의미했다. 학교에서도 마감 날짜에는 익숙했지만, 커다란 차이점은 학교에서 늦으면 성적이 나빠질 뿐이지만, 업무에서 마감을 못 맞추면 짐을 싸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P122

6. 나는 어렸을 때 플러퍼너터 샌드위치를 좋아했다. 대학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으면서도 처음 한 디자인은 디자인 이전의 삶에 의지한 것이었다. - P125

그는 몸소 모범을 보였다. 학과에서도 그랬고, 작품으로도 그랬다. 존과의 관계에서도, 삶의 방식에서도 그랬다. 그는 디자이너라는 것이 단순히 직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디자이너는 ‘나‘라는 정체정 자체였다. - P131

볼티모어 시절 극장 일은 꾸준히 했었다. 창의력을 발산하는 창구가 되어 정신건강을 지켜주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극장 포스터 작업이 나의 출구가 되었다. - P164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때까지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충격적이었다. 내 모습이 빛을 발하는 컴퓨터 스크린을 멍하니 응시하는 좀비 같을 거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냥 거기 앉아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그 말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형 꼴 좀 봐, 인생을 낭비하고 있네." 그제야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 P202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모든 것을 다 그때와 똑같이 할 것 같지만, 그만두는 방식은 달랐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조언‘에 감사를 표하면서 아무런 사건 없이 미팅을 끝내고 내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다. - P209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빌어먹게도 정말 같은 일이 자꾸 반복된다. 이게 띄엄띄엄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 P214

2004년, 우리 둘의 친구 두 사람이 9월 11일에 결혼했다. 그들은 적어도 그때쯤이면 그 날짜를 자신들의 것으로,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의 것으로 달력에 표시해도 좋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에밀리와 나도 9·11을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긴 하지만 그날을 우리의 ‘기념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날 기념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9·11은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다. - P228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특정한 한계를 무시하지도, 우회하려 해서도 안 되며, 그 대신 그 제한사항들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 P231

뉴욕의 큰 출판사들 저 깊은 곳에는 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앉아 지금도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맡은 책이 무엇이든, 편집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영업팀과 작가와 작가의 에이전시와 작가의 남편과 작가의 반려동물과, IT 사람들 등등을 모두 만족시키려 애쓰며 많은, 아주 많은 옵션들을 디자인하고 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일하지 않는다. - P280

나는 곧 ‘작품을 팔 수 있는‘ (누군가로 하여금 내가 제안한 것을 승인하게 하는) 능력이 나와 내가 존경하는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주된 차이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일에 좀 나아졌는데, 시도와 실수(대부분은 실수)를 통해서, 그리고 다른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배운 것이다. - P296

완전히 열린 작업 지침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 아트 디렉터는 처음부터 원하는 바를 아주 정교하게 정의하고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했고, 그래서 우리가 비교적 짧은 기한임에도 에너지를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면 아직까지 작업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 P311

디자이너로서 나는 일찍이 내가 받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더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의 출신이나 성장과정을 부정할 수 없었다. 디자인 학교에서 배운 것의 어떤 측면들과 내 성장 배경을 조화시켜 나만의 방식을 찾아야 했다. 세월이 흐르며 내 일에 한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스튜디오 바깥세상에서는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생이 디자인될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형제들이 술에 취해 한밤중에 전화를 걸고, 나는 그 전화를 끊어버리고, 그런데 그들이 계단을 구르고, 그러다 드로잉 한 점이 벽에 걸린다. 아직도 나는 어쩔 수가 없다. - P331

늦은 밤, 천둥과 번개가 치는 텅 빈 장례식장에서 나는 디자인할 것이 있었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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