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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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고전문학 전공자였는데, 고전문학 속 영웅들이 대다수 고아인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고아들만이 진정으로 용감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 P15

"좀! 한식부터 배워 좀! 밑반찬부터."
두번은 넘어갈 수 없었다. 둘 다 일하는데 식사 준비를 여자가 하는 건 여자의 자발적인 기여일 뿐이었다. 남자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차분하게 반박해야 했지만 여자도 쌓였던 게 많았다.
"다시 말해봐, 씨발새끼야."
격론 끝에 남자는 마트 앞에서 울었다. 여자는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 - P25

남보다 못한 가족들과도 어떻게든 연을 이어가려고 애쓰고, 처음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지옥 같은 회사를 개선시키고, 성격이 안 맞는 애인과 다투고 다퉈서는 안정적인 관계에 다다르지.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 그런 사람들처럼 살고 싶었어.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끊임없이 도망쳤어. 위기의 순간이 오면, 핑글 돌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지. 정말은 위기의 순간이 오기도 전에 도망친 걸지도 모르고. - P62

나는 가끔 건우 선배가 반자본주의 요정 비슷한 게 아닐까 의심하는데, 건우 선배 같은 타입들이 부잣집에 태어나 집안의 재산을 조금씩 사회로 돌려보내며 축적의 고도화를 막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 P76

"솔직히 역사는 그 순간을 살았던 그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전근대사는 무기로 쓰면 안되고, 근현대사에 있어선 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겠지. 민족주의자 말고 각자 나라에서 좋은 시민들이 되면 지금과는 다를 거야." - P83

21세기에 죽는 사람들은 결국 다 데이터가 될 거란 생각도 했다. - P139

이재에겐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흉내 낼 수 없이 탁월한 부분이 있는데, 대체 그런 사람을 놓치고 모든 걸 망쳐버리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밤마다의 생각은 이재보다 이재의 남편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친구라서 너무 후하게 생각하는 걸까?" - P209

어쩌면 다들 이재보다도 이재가 이끌고 다니는 공기 같은 것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으면 심장이 약간 느리게 뛰게 되는 감미로운 공간 장악 능력 같은 것 말이다. 이재의 반경에선 모든 모서리와 테두리가 달라졌다. 둘러싼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떨어뜨리는 희한한 아이였다. 아영은 이재를 좋아했고, 이재와 함께 있는 자신을 좋아했다. 질투하진 않았다. 경윤을 질투하기 전에, 이재의 대학 친구들과 직장 친구들을 질투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 P211

스무살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제나 나를 가장 완벽히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이해를 구하지 않을 수 있었고 자유로웠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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