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술에 대한 열망은 없었다. 영화감독을 꿈꿔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땐 그냥 모든 게 성에 안 찼고 내가 살고 싶은 이유가 뭔지 찾고 싶었다. 적어도 ‘최선을 다해 찾아봤는데도 모르겠더라‘라는 답이라도 얻으면 죽어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 P116

실패를 해야 그만둘 명분이 있는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패배감을 가질 일이 다반사라서, 어디서부터가 실패인지도 본인이 정해야 한다.
어렵게 입봉하면 직업란에 ‘영화감독‘이라고 쓸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변함없는 생활고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선배 영화감독의 부고를 접할 때마다 심장이 떨렸다. 불행한 자살만은 아니길 바랐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더 이상 만들 수 없어서 죽음을 선택하는 일만은 아니기를. 8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늘 긴장하고 있다. 내가 좇고 있는 목표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 빨리 그만두겠다, 수시로 다짐한다. - P117

타인의 작품에 대해서 악담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누군가의 글을 보았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생이 있었는지를 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악담해도 된다. 그리고 나도 악담할 것이다. 물론 악담을 받으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그래서 나는 일단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 진짜 모든 악담을 일일이 찾아 읽고, 악담을 쓴 사람의 성향을 파악해서 내가 그 악담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기 위해 그의 앞뒤 글까지 다 찾아 읽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난 세 달 동안 여기저기 해외를 다니느라 오랜 시간 검색을 쉬었더니 흐름이 끊겼다. 이젠 살도 많이 쪘고 열정도 다했다. 누가 악담을 하든 말든. 모두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든 말든. 행사인지 파티인지 아무튼, 나는 괴롭다.
괴롭다. 정말 괴롭다. - P145

엄마는 자기 전에 ‘편안히 잘 자라‘라는 문자를 지금도 자주 보낸다.
어둡고 긴 터널을 외롭게 지나던 시절이 있었다.
약도 안 듣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혼자 견뎠다.
입은 꼭 다문 채 점점 마르고 새까맣게 변해가는 나를 본 뒤로 엄마는 매일 밤 "편안히 잘 자라" 문자를 보내주었다.
어두운 망망대해 위에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 엄마의 문자는 그날 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저 문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 P211

자리가 어색하니 다들 입맛이 없었나 고기가 많이 남자 필수는 영어로 "도축한 고기는 남기면 안 돼. 먹기 위해 동물을 죽였기 때문이야" 하더니 책임감을 갖고 남은 고기를 전부 해치웠다. 너무 큰 사람이 너무 많이 먹는 그 모습이 엄마는 그렇게 불쌍하고 마음 아팠단다. - P236

시나리오를 쓰면서 경계하는 점.
나를 무고하고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습관.
어려운 장애물을 대충 피하고 싶은 습관.
인물을 통해 남 탓하고 싶은 습관.
2018.06.15.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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