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넷페미史 - 우리에게도 빛과 그늘의 역사가 있다
권김현영 외 지음 / 나무연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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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중의 지지는 언제 흩어질지 모릅니다. 대중의 지지를 추구하다 보면 도리어 그 지지가 사라지기도 하고요. 판을 기획하는 이들이 재미있어하면 대중들은 그걸 눈치채고 따라올 거예요. 영 페미니스트로서 되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은 남들이 뭐라든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오히려 유희를 잃어버리지 않을 때 돈이나 조직, 지속 가능성이 따라올 수도 있어요. 안 따라와도 어쩔 수 없지만요. (웃음) 최근 들어 텀블벅 등을 활용해서 활동 가능한 기본적인 경제적 조건이 마련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새로운 그룹이 등장하자마자 지속 가능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그런 걸 고민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런 그들에게 입금을 합시다. (웃음) - P72

마르크스는 이런 말을 했지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새로운 여성들은 모두 기존 질서의 효용을 다한 순간 등장합니다. 즉 세상이 망하기 직전에 등장하는 거예요. 신여성이 등장한 이후 세계대전이 벌어집니다. 영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한 이후 한국에서는 IMF가 터졌습니다. 이 여성들이 등장하면 세상이, 한국이 망합니다. 왜냐하면 이 여성들은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망했을 때 등장할 수 있거든요. 기존 질서로부터 이탈하는 집단이 등장한다는 건, 그만큼 기존 질서의 힘이 약해졌고 기존 질서로부터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 P77

이 조짐을 읽어야 해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뉴 페미니스트가 등장한 이상 우리는 10년 이내에 망할 겁니다. (웃음) 하지만 달리 보면 우리에게는 1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망조의 조짐을 읽고서 이 시간을 세상을 바꿔보는 기회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여성들의 등장을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징후로 읽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즉, 기존 질서의 효용은 다했고, 우리는 망했다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 P77

사실 2005년을 기점으로 10여 년간 페미니즘은 대중운동으로서 말 걸기에 실패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2015년을 기점으로 벌어진 사건들이 그전의 페미니즘과 단절되어 뿌리 없이 등장했다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저는 광대한 네트에서 기억의 조각으로 페미니즘의 문제의식들이 계속 떠다니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 영 페미니스트들은 실제로 트위터리안의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기도 했고요. 그건 제가 트위터를 통해 페미니스트들과 네트워킹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이기도 해요. - P126

그렇게 페미니즘이 힘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도 회자되었습니다. 이때의 돈은 끝없는 축적을 목표로 하는 자보주의적 자본이라기보다는, 이 사회에서 교환될 수 있는 가치이자 영향력으로서의 ‘파워‘와 동의어라고 봐요. - P130

"페미니즘에는 ‘휴덕‘은 있되 ‘탈덕‘은 없다." 페미니즘의 이름이 산화되어서 사라질 수는 있겠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 언어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언제든 지금처럼 되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권김현영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이 망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거지요. - P132

월경은 여성의 삶을 조건 짓는 기본적인 현상인데, 국민안전처는 여성을 보편 시민으로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더불어서 국가기관이 생각하는 ‘활용도‘의 기준이 어떤 젠더인지도 분명하게 엿볼 수 있었지요. 국가는 여성의 삶에 무관심한 반면에 생리대 시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자본만이 월경에 지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그렇게 생리대는 취향의 문제가 되어버리는 거지요. 그러니 온갖 다양한 종류의 생리대가 소비자를 ‘유혹‘하는 현실이 펼쳐집니다. 물론 생리대의 다양성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국가가 발기한 분야에 자본이 들어와 돈벌이를 하고 여성은 호구가 된 문제를 지적하는 거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한국은 생리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입니다. - P140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저는 세상을 바꾸려면 부수고 싶은 상뿐만 아니라 만들고 싶은 미래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부정적인 사례가 바로 ‘흙수저‘라는 말이에요. 여기에는 금수저에 대한 증오는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상이 없거든요. ‘개저씨‘나 ‘아재‘ 같은 말에는 어쨌든 이런 사람이 되지 말자는 내용이 내재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선 후자가 진보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단어인 셈이지요. 물론 미래상이 하나의 단어로만 표현되진 않겠지만요.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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