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마음 -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등바등 열심히 해봐야 아이고 소용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래도 잘하고 싶다(열심히와는 다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을 보면 반가워진다.

네, 저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건 더 큰 성공을 바라는 마음과는 좀 다른데, 두려운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편안하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P10

한때는 내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고 착각했고, 어떤 때는 내가 하는 일이 너무도 무의미하고 심지어 부끄러운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괴롭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일의 바깥에 내 좌표를 놓고 나서야, 그 일이 세상의 다른 모든 일과 그리 다르지 않을 만큼의 의미와 무게로, 어떤 과장이나 비하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아주 대단하지도, 그렇다고 하찮지도 않으며, 어떤 구석은 재미있고 좋으며, 어떤 구석은 짜증스럽고 부끄럽기도 한 그런 일로. - P28

‘경험이 적은 여성‘ 컨설턴트였던 나에게 ‘제 선생‘이라는 호칭과 함께 날아온 그 질문은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 어떤 격려나 칭찬보다도 임파워링empowering한 것이기도 했다(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 나에게 이 질문은 ‘네게 이 질문에 답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메시지였다). - P32

내 이야기에 대한 편집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신을 위한 배려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필요하다. "차별받은 적 없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내가 겪은 차별뿐 아니라 세상에 버젓이 존재하는 차별까지 지워버리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 P36

성장은 과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이고, 잘 수행된 과정은 세상이 성공이라고 정의하는 결과를 담보하지는 못해도 성장만을 가져다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수행의 과정에 지적으로 집중하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의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자신이 무엇에서 나아졌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걸 발견한 사람은 거기에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 P41

과거에는 그럴 법했던 이야기가 더는 통하지 않는 그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왕이면 더 좋은 이야기가. 이야기를 계속 고쳐 쓸 수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 P84

줄어든 선택지에도, 그 선택지 앞에서 단기적 최적화를 가장 먼저 고려하게 되는 것에도 구조적 압력이 작동한다. 어쩌면 그 선택들이 지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의 선택들과 선택의 결과들을 서사화하는 방식만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온전한 선택이며, 그게 곧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 태도는 과거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개인의 상상력을 결정짓는다. - P87

사적인서점이라는 현재는 정지혜 님이 자신을 ‘북 디렉터‘라고 칭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임대료 얼마인 공간에서라면 한 달에 몇 권은 팔아야 먹고살 수 있다는 불가피한 셈법과 책을 향한 자신의 셈 없는 애호를 타협시킬 방법을 찾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P92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건 곧 자기 자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기특‘이나 ‘불쌍‘ 같은 우회로를 선택할 이유는 없지요. - P98

나는 애호하는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겹겹의 우주가 있다는 걸 ‘안다.‘ 믿는 것이 아니라 안다. 그리고 나의 그 우주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낀다. - P107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시간을 셀프착취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크건 작건 스스로 목표를 정하면, 고용주와 나 사이의 제로섬 게임 바깥에 내 일의 또 다른 층위가 생겨난다. 과잉의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은 고용주에게 필요 이상의 노동력을 갖다 바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삶에서 개인적 충만함을 위한 기울기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가파른 기울기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다른 경험에 직면해서도 그런 기울기를 추구한다. 가파른 기울기는 즐거움의 총량을 늘린다. 즐거움은 탁월함의 다른 이름이다. 무엇이 즐거운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고, 탁월함 또한 그렇다. - P173

일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대상인데, 일을 잘하는 게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삶을 사는 것과 별개의 문제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당장 눈앞의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고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을 잘한다는 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는 그냥 무던한 사람, 좋은 친구가 아니라 정확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 P186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상을 만인의 만인을 향한 아레나로 보느냐, 혹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커다란 학교로 보느냐에 따라 사람은 성장하거나, 성장하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실수하거나 넘어지거나 되돌아가는 것이 더 장기적인 계획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내가 넘어질 때 당신이 기다려주고, 당신이 넘어질 때 내가 기다려주겠다는, 장기적인 신뢰와 환대를 주고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세상을 학교로 볼 수 없을 것이다. - P222

나에게 ‘책임‘은 나를 앞으로 나가게 밀어붙여주는, 너무 달콤하고도 강력한 기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일으킨 동기가 사그라질 때, 나를 끝까지 길 위에서 버티게 해줄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힘 중 가장 좋은 것이 내게는 책임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깨우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자발적 동기는 믿지 못하지만 나의 책임감은 믿었고, 그래서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기 위해 책임을 맡는 방식을 취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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