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 어떤 운동 하나가 삶의 중심 어딘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일이었다. 일상의 시간표가 달라졌고 사는 옷과 신발이 달라졌고 몸의 자세가 달라졌고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고 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다. (8-9)
하지만 난 고독과 싸운 적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편하고 조용한 애하고 대체 왜 싸우지? (16)
센 말을 확 지를 이유는 충분해 보였지만 내 안에 뿌리 박혀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과 내 안에서 아직까지 살아 숨 쉬며 쓸데없는 생을 이어 가고 있는 한국 전통 유교 소녀가 나를 막아섰다. (26)
이 모든 것이 여자들이 그라운드로 진입하는 것을 겹겹이 막으며 철통 수비하고 있다. 축구로 입문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축구인 것이다. (34)
"나의 킥은 느리고 우아하게 너희들의 ‘코칭’을 넘어가지." 느리고 우아하고 통쾌했던, 잊지 못할 로빙슛! 러빙슛! (60)
우리 팀 축구 경기가 한 권의 책이었다면 두 트리오가 월패스로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들마다 책장 한 귀퉁이를 접어 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펴서 보고 또 봤을 것이다. 거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87)
순간, 피치 위를 감싸고 있던 후덥지근한 공기가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지는 듯하더니 우리 팀 선수들의 눈빛에 무언가 반짝이기 시작하며 대역전의 서막이 열렸다, 같은 건 스포츠 만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일도 다 체력이 받쳐 줘야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107)
김나래! 잘했어! 김나래! 힘내라! 김나래! 우리 여기 다 있다! (214)
하지만 40~50대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육아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여자 축구팀을 통틀어도 현재 미취학 자녀를 둔 선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물론 출산 시기에 따라 예외도 있지만) 보통 여기에 30대가 딱 걸린다. 우리 팀만 해도 축구장에 나오는 30대들은 미혼이거나 나처럼 아이가 없는 기혼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6년 차 미드필더 오주연도 아이를 가지면서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됐다. (269)
일 나가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어떻게든 일상에 축구를 밀어 넣는 이 여정 자체가 어떻게든 골대 안으로 골을 밀어 넣어야 하는 하나의 축구 경기다. 기울어진 축구장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걸 잘 알기에 모두들 최대한 모두의 일상에 축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패스를 몰아주고 공간을 터 주고 리듬을 맞춰 준다. 여기서 우리는 한 팀이다.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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