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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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보이가 갖다 주는 꽃을 먹고 남은 통조림통에 꽂아놓고, 구매한 음식을 탁자 위에 벌여놓고 부부가 마주앉아 먹을 때, 우리 살림살이는 풍부하였고 재미스러웠다. (36)

구미 만유 1년 8개월 동안의 나의 생활은 이러하였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서양 옷을 입고, 빵이나 차를 먹고, 침대에서 자고, 스케치 박스를 들고 연수소를 다니고(아카데미), 책상에서 프랑스어 단어를 외우고, 때로는 사랑의 꿈도 꾸어보고, 장차 그림 대가가 될 공상도 해보았다. 흥 나면 춤도 추어보고, 시간 있으면 연극장에도 갔다. 이왕 전하와 각국 대신의 연회석상에도 참가해보고, 혁명가도 찾아보고, 여성 참정권론자도 만나보았다. 프랑스 가정의 가족도 되어보았다. 그 기분은 여성이요, 학생이요, 처녀로서였다. 실상 조선 여성으로서는 누리지 못할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장애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87)

구경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썼다. 대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아직 비빔밥 같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용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한 것은 자신에 부끄러움이 없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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