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고르듯 살고 싶다 (해피뉴이어 에디션) - 오늘의 쁘띠 행복을 위해 자기만의 방
임진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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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빈 쟁반을 든 처지이면서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되었든 내 삶의 온갖 선택 사항들도 이런 마음으로 고를 수는 없을까?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쟁반을 든 나‘라는 인물로 한 발 한 발 나긋하고 점잖고 구수한 당당함을 지니고 싶어졌다. (25)

무언가를 계속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다 보니 하루, 한 주, 한 달의 흐름이 참 버거웠다.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개운함 없이 겹쳐지기만 하는 과정이 나를 짓눌렀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은 없고 느리다는 것에 대한 질책만이 있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일하는 시간까지 단가로 계산되는 삶이었다. 대표는 ˝너네 월급도 안 나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칭찬받고 싶은 마음은 사치였다. 어쩌면 엄청 고심해서 쓰레기를 만드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생가까지 들었을 때 퇴사를 결정했다. (41)

이렇게 나열하니 우습기도 하고 뻔뻔한 자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인생에 맞추어진 아찔한 고비들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모든 일의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실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서 같은 그림들을 계속 그렸고, 나의 방향성이 보이는 책을 꾸준히 보고 수집하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내 이야기로 종종 책을 만들며 결이 맞는 곳과 일을 했더니 어느덧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상이 생겼다. 신기하게도 느낌 좋은 낙서, 담백하고 귀여운 그림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기에 꾸준히 일로서 해올 수 있었다. 좋은 세상이다. (63)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차가워진 혹은 먹먹해진 마음에는 조금씩 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의 문제는 냉장 보관된 청보다 더 차갑게 굳을 수 있기에 단숨에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더디게 나아진다. 그리고 저으며 녹이는 과정이란 일상의 다정한 한마디와 잦은 표현, 그리고 노력하지 않아도 피워낼 줄 아는 표정이 아닐까.
점점 고개를 떨구며 이내 울고 싶어졌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갑게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엄마인 양 쉽게 내뱉고는, 죄송한 마음에 돌아서서 혼자 울기만 하던 내가 늘 미웠다. 간신히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곤 했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죄송하다는 말이 쉬워서.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차가움으로만 설정된 사람인 줄 착각하며, 스스로 부드러움의 버튼을 누르길 머쓱해하는 멍청이가 바로 나다. (90-91)

매사에 ‘내가 더 힘들어‘라는 시선으로만 상대를 바라보는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그 시선은 너무나 다양하게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 (113)

서로 노력하지 않아도 슬며시 안 만나게 되는 사이가 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딱 거기까지인 것이다.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는 동안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고, 그런 일이 지속된다면 결국은 질리게 된다. 그냥 그런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맞지 않는 둘이었다는 결말.
참 나쁘게도 거짓 가득한 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에 마음에서 가위를 꺼냈다. 나 혼자만 품고 있던 가위는 아니었을 테다. 서로 각자의 가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115)

언제나 별일 아닌 일로 괴로워해야 했다. 괴로워해야 구성원이 되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들이 큰 문제가 되어 그 네모난 사무실 안의 사람들을 모두 잡아먹던 나날. 집으로 돌아간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다시 그 세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삶이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없다는 사실. 1년 반이 지나서야 내가 회사에 다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15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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