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교열 중 - <뉴요커> 교열자 콤마퀸의 고백
메리 노리스 지음, 김영준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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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전인적全人的이라서 좋다. 문법, 구두법, 어법, 외국어와 문학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갖가지 경험도 소용된다. 여행, 원예, 운송, 노래, 배관 수리, 가톨릭, 미국 중서부, 모차렐라, 뉴욕 지하철, 뉴저지 등등. 동시에 나의 경험은 더욱 풍부해진다. 산문의 여신들이 서열대로 줄을 서면 나는 저 뒤로 가야 한다. 그래도 내가 터득한 것을 전하고 싶다. (22)

나는 일하는 동안 글 전체에 대해 간간이 맞춤법 검사 기능을 실행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그러면서 오자를 잡아낸다. 하지만 이런 기능은 문맥을 고려하지 않아서, 발음은 같은데 철자와 의미가 다른 단어, 즉 동음이의어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교열자를 대신할 수 없다. (31)

우리 교열자들은 한 편의 글을 마치 미사일의 경로를 변경시키듯 자신의 방식으로 흘러가게 만들려고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교열자에 대한 이미지는 엄격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는 사람, 남들의 오류를 지적하길 즐기는 심술쟁이, 출판업에 들여놓고 주목받길 원하는 보잘것없는 사람, 또는 더 심하게 말하면 작가가 되려고 했으나 쓰라린 좌절을 겪고 i의 점과 t의 교차선에 신경을 쓰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작가들의 경력에 이바지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모든 사람이었던 것 같다. (51)

하지만 좋은 작가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 그들의 글을 떠안고 만지작거리면서 좀 이색적인 표현을 평범하게 바꾼다거나 콤마를 없앤다거나 작가로 고의로 모호하게 적은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정말로 위대한 작가들은 편집 과정을 즐긴다. 그들은 제안을 받으면 숙고하고, 충분히 근거 있는 이유로 그것을 수락하거나 거절한다. 방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52)

루는 거의 모든 면에서 엘리너와 반대였다. 그녀는 스스로 말했듯 글이 ‘무표정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엘리너는 문장을 자신의 논리에 부합시키려 했고, 루는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64)

여태껏 내가 전혀 보지 못했고 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을 자주 만났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단어는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나는 회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있어서 심지어 내가 본 적이 없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66)

이와 달리 매우 세련된 산문을 구사하는 작가를 만나면 내가 그 글을 읽으면서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존 업다이크, 폴린 케일, 마크 싱어, 이언 프레이저! 어찌 보면 이런 글이 가장 어려웠다. 읽으면서 내가 만족감에 도취됐기 때문이다. 그들의 글은 교열자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흠잡을 데 없는 원고에서 내가 끼어들 기회를 찾기 위해 계속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 뭔가를 놓친다면 그것을 변명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67)

산문의 마법사가 쓴 소설 네 편이 실린 680쪽 분량의 책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수만 문장 중 하나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이 심술궂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한다. (72)

나는 이 문장을 개선할 방법을 모르겠다. 만약 이 문제를 작가에게 얘기하면 그는 고쳐 쓰거나, 잘못된 점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세 번째 방안이 생긴다. 그냥 두면 된다. (73)

화자의 딸 릴리Lilly의 이름 철자에 대해 질의하고 싶진 않았다. 나라면 l을 한 번만 썼겠지만, 그녀는 내 딸이 아니다. 조지 손더스에 의해 말하는 화자의 딸이다. (75)

사실 나는 교열자로서 보수주의자의 편이다. 나의 임무는 손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작가와 독자로서 나의 입장은 여러 가지다. 자연스럽게 들리는 다른 복수 대명사를 찾는 너스바움과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싱어를 나는 존경한다. (92)

I는 me의 공식 버전이 아니다. me가 왠지 더 친근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은 이런 친밀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I, he, she, we, they는 각각의 목적격 단어보다 더 딱딱한 어감이 있다. me, him, her, us, them이 더 부드럽고 유순하다. 그래서 더 손쉽게 쓰인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떠안는 담대한 주어와 달리, 거기에 따라붙는 목적어가 되는 것이라 그럴 듯싶다. (114)

당시에 나는 사전이 보배로운 물건이지만 특히 복합어에 관한 한 내가 사전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던 중이었다. 하이픈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그 시기에 깨달았다. (152)

연속 콤마의 경우와 같이 우리가 매번 곰곰이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을 딱 정하고 하이픈을 일관성 있게 사용하는 편이 더 편하다. 좀 번거로우면 어떤가? 그게 우리가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다. 하기야 매번 곰곰이 생각하면 또 어떤가? (153)

언젠가 나는 엘리너 굴드에게 McDonald‘s의 복수 소유격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주 현명하게, 그런 것엔 신경 쓰지 말라고 내게 조언했다. "사람이 멈출 줄도 알아야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McDonald‘ses‘에서 멈췄다. (188)

그때는 아침나절에 한 사람이 뾰족하게 깎인 나무 연필을 쟁반에 수북이 담아서 돌아다녔다. 몽당연필이 아닌, 길찍길찍한 좋은 것들이었다. 사환이 연필 쟁반을 들고 있으면 우리는 한 움큼씩 집었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당시에도, 그 사환과 연필 쟁반이 언젠가 상아부리 딱따구리처럼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17)

진중한 어조의 편지글을 읽으니 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딕슨 타이콘데로가에 대한 나의 입장은 콤마와 하이픈 때문에 내게 항의의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입장과 같았을까? 이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나는 일단 ‘할 일 없는 사람이네‘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앞으로 그들의 말에 더 공감하려고 노력해야겠다. (230)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나처럼 연필 애호가라 할지라도 고개를 절절 흔든다. 그들도 몰래 한번 해보고 싶을 듯한데. 나는 완벽하게 뽑아낸 나선형 연필밥을 선반 위에 올려둔다. 그것은 한동안 그대로 있다. 청소부 아줌마가 긴가민가하다가 버릴 때까지. (239)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나의 작업을 기쁘게 만드는 글을 쓰는 모든 <뉴요커> 작가들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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