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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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는 가장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언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재미없음‘으로 분류되었을 특징들이건만, 독일과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느꼈던 단정함, 정갈함 같은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객 주제에 너무 관광지 같지 않았던 그 분위기가 좋아서, 듣다 보면 은근히 매력 있는 그 발음이—폭스바겐 광고의 그 ‘das Auto‘ 같은—좋아서 독학을 시도했다. (44)

재미없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좀 알아볼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독일어는 프랑스어만큼이나 쓸 일이 없었다. 과연 라이벌들답다. 업무적으로 외국어를 쓸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긴요하게 쓰이는 말들은 굳이 알 필요도 알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도 독일어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쓸모없는 진중함, 효용을 바라보지 않는 진실함 같은 것, 1+1=2처럼 딱 떨어지는 에누리 없는 말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었다. (51)

당대를 살아가던 보통 사람들이 막상 합스부르크의 황혼기를 실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전히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중심에 빈이 있고, 세계의 교양과 예술과 지성의 모든 유행을 선도한다는 자존심이 얼마나 각별했을 것인가. 그 왕조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영광의 시절 자체와 결별해야 예술이, 정신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해낸 어떤 정신적, 예술적 공감대라는 것이, 그야말로 영롱한 시대정신이 그렇게 극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 어쩐지 뭉클했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격동하여 피어오르던 뜨거운 가능성들이 그로부터 불과 20년도 안 되어서 깡그리 무너진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유럽의 역사, 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은 곧 합스부르크, 그리고 빈의 몰락이었다. (68)

이 박물관에는 심지어 영어로 된 설명도 없다. 그저 독일어가 빼곡하게 쓰여 있다. 독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역사라는 뜻이겠다. 혹시나 독일 사람들이 이 불행한 역사를 모르게 될까봐 큰 염려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허무맹랑하게 어리석고 나쁜 짓을 해왔다고, 밝은 빛의 햇살 아래에서도, 태연히 고백한다. 다시는 이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한다. 지금 베를린은 새벽 서너 시에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유럽 최고의 클럽 도시이기도 하지만, 참혹한 ‘어제의 세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70-71)

독일어는 예외가 많지 않다고 한다. 대신 규칙이 너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무리해서라도 많은 규칙 속에, 가능한 한 모호함을 남겨두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언어다. 단어들, 문장들 속에서 결코 길을 잃지 않겠다는 결기가, 언어에서도 전해지는 것 같다. (72)

하지만 그 10여 년 동안의 일본 드라마와 기무라 타쿠야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드물게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도 있었고, 무표정하게 사람을 희생시키는 냉혈한 배역도 있었지만, 팬들은 기무라 타쿠야를 백 퍼센트 응원하고 싶어 했다. 좋은 직업인, 동료이자 좋은 선후배, 좋은 상사이면서 또 좋은 연인이며 좋은 남편이었던, 매 순간 극도로 최선을 다하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의 현현 같았던 기무라 타쿠야를 TV에서 보는 것은, 지지 않을 싸움을 기대하는, 불가능한 꿈 같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105)

체념이라는 정당화, 순응이라는 편리함, 대의 혹은 대세라는 이데올로기에 일본 사람들이 쉽게 투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오래된 확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키는 그래서 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유일한 단독자 같은 사람이 결국 세계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마는 이야기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 같다. 세상에 개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선언, 하나하나의 개인이 우주이며 알파고 오메가라는 다짐이 더욱 강력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돌파력을 응원한다. (122)

하지만 아무튼, 계속 쓰고, 계속 뛰며, 계속 싸워나가는 그 ‘계속해보겠습니다‘ 정신을 사랑한다. 체념하지 말고, 순응하지 말고, 투항하지 말고, 다른 그 어떤 존재에게라도 나를 방치하지 말라는, 어찌 보면 잔소리 같은 메시지가 아직은 질리지 않는다. 그렇게 ‘언제 적‘ 하루키는 ‘그래도‘ 하루키가 된다.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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