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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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의 소설집 <투견>을 읽고 몇 안 되는, 좋아하는 여성 작가가 한 명 늘었다고 생각했다.  

 좀 오래되서 가물가물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기로 <투견>에서의 김숨의 글은 기괴하고, 음울하고, 그럼에도 진짜인.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습윤한 냄새가 진창 들러붙는 것만 같은. 

 <간과 쓸개>를 서점에서 집어 들고,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러한 느낌을 또 받을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분명 나쁜데, 나쁘지 않은. 혹은, 불쾌한데 불쾌하지 않은.

 표제작인 간과 쓸개는 <투견>에서 보여주었던 김숨의 글과 상통하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겉보기엔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세계는 비틀리고, 엉망진창인, 그럼에도 그게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럭키 슈퍼는 김숨이 써왔던 여타의 소설들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분위기 뿐이다. 그러니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비슷하다. 밝음과는 거리가 멀고, 긍정과 희망을 보이지 않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돌아가고 있고, 나의 세상은 더 나아질 기미도, 나아질 거라고 믿지도 않는 것 말이다. 팍팍한 현재를 실감나게 그려내서, 읽고 난 후엔 약간의 여운에 잠겨있었다.  

 흑문조룸미러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현실과 허구를 마구 넘나드는데, 환상적인 것에 너무 골몰하지 않았나 싶다. 비슷한 선상에 있는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는 제목부터 대놓고 그럴싸한 연출이라도 하지, 흑문조룸미러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게다가 두 소설은 비슷하기까지 하다. 비슷한 걸, 정말 비슷하게,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데, 두 편씩이나....! 두 소설은 다 07년도에 쓰여졌는데, 간과 쓸개럭키 슈퍼는 09년도에 쓰여졌으니, 쭉 그대로 환상성에만 집착하지 않고 다시금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 게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연장선격인 얘기로 모일 저녁 역시 현실에서 시작해서 어느 지점에서부터 환상으로 넘아가는데, 굉장히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그런지 좋았다. 플러스로 모일 저녁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환상적인 것도 좋아한다. 단, 재미가 있다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면. 무언가,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면. 남는게 있다면. 이런 전제들 중 하나만이라도 붙는다면 말이다.

 아직은 김숨의 글을 놓고 싶지 않다. 더 보고 싶다. 전보다는 그 감정이 미진해진게 나조차 아쉽다. 지금의 들큼한 감정이 명확한 형태의 '좋음'으로 다시금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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