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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
리차드 미들톤 지음, 이용중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7월
평점 :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 우리가 쉽게 하는 말이다. 이 말대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제 천국은 어디로 가야 할까?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지금 여기는 어딘가? 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내려온다고 말한다. 천국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도 말해야 한다. “예수님 믿고 이 곳이 천국임을 아세요!”
그런데 이 곳을 천국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망가졌다. 사람만 망가진 게 아니라 모든 게 망가졌다. 사회, 정치, 전통, 환경, 동물, 음식, 시간과 공간, 역사, 과학, 예술 등 망가지지 않은 것이 없다. 망가진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고쳐야 한다. 고치는 과정이 바로 구원이다. 이런 맥락에서 구원 대상은 단순히 사람을 넘어 ‘우주적’이다. 하나님은 사람만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요3:16).
놀라운 건, 하나님이 이 과정에 우리를 참여시키신다는 점이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한다. 왕은 세상의 통치자다. 제사장은 모든 관계의 갈등을 푸는 화해자다. 즉 우리는 왕으로서 세상 모든 관계에서 망가진 문제를 풀어내는 제사장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거룩한 산 제물이다. 망가진 세상을 본 받지 말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삶의 현장이 예배며 곧 천국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몸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실 것이다. 몸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보이는 세상을 심판받아 멸망할 대상이 아닌 회복될 소중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니 망가진 곳곳을 보며 외면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망가졌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고칠 수 있는 지 고민하며 도전한다. 천국은 무한도전이다.
이러한 수고는 완성될 천국에 대한 ‘기대’ 없이 불가능하다. 성경이 보여주는 천국은 자유, 해방, 화해, 안식, 기쁨, 누림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세상 모든 영역에서 이 날이 오기를 꿈꾼다. 꿈은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물론 과잉 기대는 우리를 쉽게 좌절시킨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눅7:23)! 조급하지 마라. 하나님에게 천년은 하루다. 비록 시간 이해가 다르더라도 때가 되면 이뤄질 것이다. 좌절금지!
물론 조급함만 있는 게 아니다. 둘로 쉽게 나누려는 ‘성급함’도 있다. 성과 속, 개인과 사회,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은 천국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 안에서도 ‘우리’와 ‘그들’로 나눈다. 아마 그곳에도 자유, 화해, 안식, 기쁨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함께 할 수 없는 곳이라면(아무리 좋아도!) 천국이 아니다. 천국을 가장한 자기만의 성, 바벨탑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천국은 나를 통해 드러난다. 망가진 세상 밖이 아닌 속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몸부림을 통해 천국이 가까이 오는 것이다. 이미 우린 천국을 경험했다. 망가진 나는 새로운 내가 되지 않았던가! 나를 떠난 나는 없다. 내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나는 다시 태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너와 내가 있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러니 내가 곧 신천지(新天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