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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태양
린량 지음, 조은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9월
평점 :
▷ 작은 태양
▷ 린량
▷ 글항아리
린량(1924~2019) 대만의 아동문학의 거목으로 불리는 작가이다.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서 1946년 대만으로 이주했고, 『국어일보』에서 시, 산문 소설 등을 쓰기 시작했다. 1964년 『국어일보』 출판부 편집장을, 1972년 출판 부장을, 1993년부터는 사장, 발행인과 회장을 역임했다. 2005년 81살에 은퇴하고 대만 아동문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평생을 편집자로서 아동문학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신문에 게재하던 산문을 엮어 출판한 1972년 《작은 태양》은 현재까지 160쇄를 찍었고, 대만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 도서로 불린다. 반도체와 TSMC로 세계적 평가를 받는 대만의 주류세대는 이 책을 읽으며 성장하지 않았을까!
“단칸방, 비 오는 날 부엌으로 가는 아내를 보노라면 멀리멀리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창문을 열면 빗속을 걸어가 부엌에서 외로이 밥을 하는 아내가 보였다. 격자창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에 시야가 흐릿했다. 나도 같이 가고 싶지만, 부엌이 너무 좁아서 내가 칼질할 자리도 없었다. 방에서 원고를 쓰면서 기다리다 보면 아내가 쟁반을 받쳐 들고 비를 맞으며 돌아왔다. 옷도 젖고 얼굴에도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집이라 할만한 곳이 생기면 아내는 더 이상 비를 맞지 않겠지. 아직 머나먼 일이겠지만, 빗방울을 훔쳐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얼굴로 참을성 있게 그날을 기다렸다.”
“작은 태양, 우리 아기는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얼굴은 엄마 닮아 동그랗고 몸은 나를 닮아 홀쭉한 아기. 어쨌거나 우리 마음속에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기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눅눅하고 비좁은 단칸방으로 돌아왔다. 이 작디작은 세 번째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차지하고 말았다. 아기가 밤잠을 못 자게 하는 바람에 우리는 낮에도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으로서 맛보는 가장 즐거운 괴로움이며 가장 달콤한 힘겨움이다. 밤이건 낮이건 우리 아가를 꼬옥 안아주고 싶다. 영원토록!”
중국 본토에서 건너왔기에 린량은 단칸방에서 가난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단칸방은 숙소의 대문가에 위치했고, 벽 너머는 공동 화장실이고, 창문 아래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골목길에는 다투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방은 아늑함과 거리가 멀다. 물론 이러한 현실이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원망하지 않는 것은 둘이서 함께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라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를 의미한다. 혼자 꾸는 꿈보다 함께 꾸는 꿈이 더 클 것이다. 어지간한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시작은 더 나은 현실로 가는 출발점이니까. 정상을 오르려면 대문 밖을 나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단칸방에서 태어난 첫째가 밤낮으로 울어댄다. 밤낮으로 피곤하고 괴롭지만, 또한 기쁨이라고 말한다. 린량은 아이를 작은 태양으로 말하며, 힘겹게 짊어지고 가는 짐이 아니라 인생길에서 처음 만난 가장 사랑스러운 벗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의 아이에 관한 생각은 세 딸(린잉, 린치, 린웨이)을 대하는 이야기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이를 다스리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인생을 함께 하는 벗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린량의 괴롭지만, 또한 기쁨이라는 솔직한 표현과 아이를 동등한 인생의 벗으로 대하는 부분은 크게 와닿은 부분이다.
책은 세 딸과 함께하는 15년간의 성장기를 44편의 에세이로 묶어 출간한 것이다.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65년 전이고, 책으로 출간된 것도 50년 전이다. 너무 오래돼서 요즘 시대와 맞지 않을까 싶겠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인간의 의식은 수천 년 전과 비교해서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서 느끼는 희로애락은 과거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서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호불호가 없을 만큼 재미있게 쓰였고,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의 표현력은 일품이다. 특히, 이야기의 끝에 한 문장으로 생각을 표현한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책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무겁지 않고 편안한 이런 에세이가 무척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