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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김선희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평점 :
◆ 소개
▷ 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 김선희
▷ 김영사
▷ 2022년 06월 17일
▷ 280쪽 ∥ 416g ∥ 140*205*17mm
▷ 자녀교육/에세이
◆ 후기
▷내용《下》 편집《中》 추천《下》
“님”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의존명사로서 사람의 이름 다음에 사용하여, “씨”보다 두 배 높여 이르는 말이다. 홍길동 씨도 충분히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다. 이에 더해 “님”은 상대에 존경의 마음마저 들어가는 말이다. 이게 참으로 재미있는 게, “님”은 구어체(말하기)에서 사용하지만, 문어체(글쓰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장님 지시사항은 틀린 말이고, 사장 지시사항이 옳은 표현이라고 한다. 특히 “선생”이라는 단어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기에, “선생님”이라는 표현은 “역전앞”과 다를 바 없으며, 무엇보다 더 존경하지 않으면서 “님”을 남발하는 오늘날의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 하겠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고객님”이다. 존경한다면 그따위로 상담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한결 가벼워요.’ 아이는 어느새 자긍심마저 깃든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당분간 내가 예진이처럼 너와 같은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일어설 때까지 힘이 되어주면 어때? ‘좋을 것 같아요.’ 전화기 너머로 반기는 현아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은 법적으로도 폭력이 금지되었기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요즘 아이들은 우리 어른 세대에 비해 인권 감수성이 한층 예민하다. 공공연하게 폭력을 당해온 어른 세대 중 일부는 가정, 학교, 직장에서의 폭력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아이가 폭력 피해를 호소하면 ‘이러다가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하고 염려하곤 한다. 혹은 오히려 ‘어느 정도의 폭력은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심지어 자신이 너무 존중하며 키워서인지 아이가 폭력에 과민한 것 같다는 불필요한 반성을 하기도 한다.”
2001년 영화 “친구”에게서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담인 선생 역을 맡은 김광규가 아이들의 뺨을 마구 때리면서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대사는 아직도 우스갯소리로 많이 따라 하는 말이다.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교련 선생이 군사훈련에서나 주는 얼차려를 학생들에게 시킨다. 마대로 후려치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등장하는 선생들은 하나같이 지휘봉을 가지고 다니면서 학생들을 후려친다. 영화는 심의가 있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의 10/1도 채 보여주지 못한다. 불과 2~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관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생이란 작자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패는 일을 더 많이 했다. 만삭의 몸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어느 여교사는 수학 시험 채점지를 보고, 틀린 개수만큼 손등을 지휘봉으로 내려쳤다. 학급성적이 학년에서 꼴들을 하면, 시멘트 바닥에 원산폭격을 시키거나, 책상 위로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맞아야 했다. 칠판을 짚고 마대로 엉덩이를 맞는 것은 매우 약한 처벌이었다. 나는 그런 인간들이 있는 학교가 싫었고, 평생에 개근상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다. 존경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선생이 평생 단 한 명도 없다. 무인도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세 가지라면, 검사·판사·변호사를 데려갈 것이고, 네 가지라면 교사를 포함할 것이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없다.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지면 마지막까지 삐뚤어진다. 첫 페이지부터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표현하는 저자의 글을 보고 그냥 할 말을 잃었다. 교사란 무어인지? 교사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자신의 직업에 관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법으로 체벌이 금지되어서 물리적으로 폭력은 행사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뇌 구조는 3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존경이라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진정한 마음으로 비롯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교사들에게 내 아이를 결코 맡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