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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평점 :

◆ 소개
▷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폴 콘티
▷ 심심(푸른숲)
▷ 2022년 06월 07일
▷ 340쪽 ∥ 494g ∥ 140*210*30mm
▷ 심리치료
◆ 후기
▷내용《上》 편집《中》 추천《上》
한국의 명강사인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어쩌다 어른에서 이러한 강의를 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3시간 전에 행복했고요. 내일 오후 5시에는 행복할 거예요. 이게 제 답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건, 지금 기온이 몇 도야? 라고 질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상황과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우리 뇌는 트라우마같이 아주 극단적으로 힘든 기억이 아니라면 강도보다 빈도를 기억해요. 이를테면 하루에 자질구레하게 안 좋은 기억이 5개면 굉장히 안 좋은 날로 기억하는데, 반대로 자잘한 좋은 일이 5번 있으면 행복한 날로 기억되는 겁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교수의 강의에서, 돈이 줄 수 있는 최대의 크기는 대략 5,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음식으로 생명이 위협되지 않는다면, 5억 5조가 되어도 행복의 크기는 비약적으로 커지지 않는다 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크기가 아닌 빈도라는 이 말이 경험적으로 격하게 공감되며,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레이디 가가’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트라우마 바이러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 곳곳을 강타하는 것을 보면서, 트라우마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남기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트라우마도 실체는 보이지 않으며, 조용하고도 음흉하게 작용하는 그 양상만 드러낸다. 트라우마는 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면서 스스로 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친 다음 또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고 다시 본래 사람에게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세대 간에 전달되는 트라우마 문제도 생각해봐야죠. 아이들은 심지어 태어나기 전에도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가 겪은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현상은 전쟁이 났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예컨대 독일에서, 제 조부모 세대의 모든 어르신은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했고 게다가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후 신경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아니면 다른 형태로 세대를 이어 계속 발현되는 게 보입니다.”
나는 16년 차 식물만 먹는 비건이다. 채식을 시작한 계기는 생명에 관한 트라우마였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을 잃는 것이 고통스럽다면, 그 생명을 빼앗기는 가축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혼자 골방에 처박혀 몇 날 몇 개월을 괴로워하고, 몸은 쓰러질 지경인데도 걷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무작정 걷기만 하다가 그냥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생명을 잃기 싫어하는 만큼, 살아있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어차피 다른 생명을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의 최소한의 생명을 취하고, 최대한으로 생명을 살리는 방법을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트라우마는 자기 복제를 멈추기 시작했다.
인간이든 젖소이든 젖을 내기 위해서는 임신 상태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건강에 좋다고 마시는 우유는 젖소가 임신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젖소는 우리에 갇혀서 젖을 생산하기 위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강제적으로 임신 상태를 반복하고 젖을 만들어 낸다. 책받침만 한 공간에서 성장촉진제를 맞고 60일 만에 육계가 되어 도축 당하는 닭의 고통은 어떠할까? 내가 젖소이자 닭이라면, 젖과 살점에 나의 고통이라는 사념을 심을 것이다. 내 젖과 살점을 먹으면서 내가 느낀 그 고통을 느끼라고 말이다.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인간이나 동물만이 기억을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는 트라우마를 가지지 못할까? 트라우마는 직접 겪지 않아도 전염되어 내 삶을 파괴한다. 행복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를 찾아다니고 있다면, 트라우마가 어떻게 내 삶을 파고드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