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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 리 퇴계길을 걷다 - 지리학자, 미술사학자와 함께
이기봉.이태호 지음 / 덕주 / 2022년 4월
평점 :

◆ 소개
▷ 지리학자, 미술사학자와 함께 육백 리 퇴계길을 걷다
▷ 이기봉/이태호
▷ 덕주
▷ 2022년 04월 25일
▷ 374쪽 ∥ 692g ∥ 152*225*24mm
▷ 여행/에세이
◆ 후기
▷내용《中》 편집《中》 추천《上》
이황(1501~1571) 이언적, 이이, 송시열, 박세채, 김집과 함께 문묘(공자) 종사와 종묘(조선 역대 왕/왕후)배향을 동시에 이룬 6현 중 한 명으로 불린다. 1501년 경북 안동에서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위었지만, 안동부사를 지낸 이우의 조카이자 문하생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 1520년 20세 무렵 밤낮으로 독서를 하고 『주역』 공부에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쳐 이후 잔병치레를 달고 살게 된다. 천원 권 인물의 주인공이 이황인 만큼 대학자이지만, 1534년 34세의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치적 활동을 시작했다.
이황이 왜 1975년 발행된 천원 권 지폐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드라마에서 이황을 자주 볼 수 없는 것은 인생에서 극적인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고려를 지킨 정몽주나, 새로운 나라를 세워서라도 백성을 살리려 한 정도전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황은 살아있을 때부터 유종으로 불리며, 주희에 버금가는 대학자로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이런 배경에는 당대 유학을 그저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했으나, 이황은 사상적으로 깊이 파고들어 사유의 경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군주의 자리는 백성의 지도자로서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므로, 직무에 태만하고 소홀히 하다면 곧 백성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 하며, 학문을 열심히 하고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성군을 될 것을 주청했다.
이황의 일화 중에 맏손자 안도가 아들 창양을 얻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런데 창양이 태어난 지 반년 만에 아기엄마가 다시 임신하는 바람에 젖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금처럼 분유가 있던 시절이 아니라, 손자며느리는 친정의 딸을 낳은 여종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퇴계가 이 일을 알아채고는 즉시 중단시키고 “내 자식을 키우기 위해 남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다. 몇 달만 참으면 두 아이를 구할 수 있으니 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려라” 편지를 썼다. 하지만 겨울과 봄을 밥물로 버틴 창양은 결국 죽고 말았다.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을 이황은 가족들에게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친분 있는 문인들에게는 그 아픔을 토로했다고 한다. 또한, 35살이나 어린 이이에게도 반말이나 하대하지 않고 존중했다고 한다. 성리학이라는 세상에서 그 섭리에 따라 살지만, 이황은 신분이나 나이를 초월하여 동등한 인격체로 여긴 평등사상을 몸소 실천했다.
P.187 “1.5Km 정도 호숫가를 붕 떠서 가는 기분을 느끼며 걷는 이 길이 꽤나 낭만적이다. 육백 리 퇴계길 중 짧게 산책할 수 있는 좋은 길을 뽑으라면 이 길도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멋지다. 그 길 끝에 모텔 하나가 나왔다. 아직 중앙탑사적공원까지 2.5km 정도 남았는데, 모텔을 보니 다리가 불편하신 이태호 교수의 피곤이 갑자기 급상승하는 것 같다. 오늘의 일정은 그 모텔 앞에서 끝을 맺었다.”
서울 경복궁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9박 10일간 퇴계 선생이 걸었던 길을 두 교수가 직접 걷는다. 이 길은 퇴계 선생이 선조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고향인 안동으로 귀향길을 떠난 13박 14일간의 길이라고 한다. 나는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언젠가는 스페인 순례자 길 800km를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와 예능으로 보는 그 길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 길에 대한 설렘과 벅참이 이 책을 읽고 보면서 느껴진다. 800km에는 못 미치는 235km의 거리지만, 두 교수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이 땅을 다시 보게 한다. 자동차를 타고 하루 내에 전국의 유명 명소를 관광할 수 있지만, 육백 리 퇴계길은 걷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퇴계 선생의 삶을 알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면 우리가 왜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지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걸으면 보이는 휴식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