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
강인식 지음 / 원더박스 / 2022년 4월
평점 :

◆ 소개
▷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 강인식
▷ 원더박스
▷ 2022년 04월 05일
▷ 276쪽 ∥ 354g ∥ 135*200*18mm
▷ 한국 에세이
◆ 후기
▷내용《中》 편집《下》 추천《中》
혈우병(hemophilia)은 혈액을 응고해 주는 인자가 부족하여 피가 잘 멈추지 않는 유전성 질환에 속한다. 자연적으로 지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다치게 되면 출혈이 심하여 자칫 목숨까지 위태로워진다. 외부적인 상처 말고도 인간의 몸은 세포가 하루에도 3300억 개가 넘는다고 한다. 몸이 피곤해서 생기는 혓바늘부터 위에 염증 등 내부적으로도 출혈의 상태가 생긴다. 특히, 혈우병 환자들은 뇌출혈이 자주 발생하는데, 가장 무서운 합병증이라고 한다. 외부 상처뿐만 아니라, 피로로 오는 내부 상처까지 관리해야 하는 질환으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마라’ 정도이다.
책에 등장하는 박현묵 군은 중증 혈우병 환자이다. 어린 시절부터 침대와 휠체어 말고는 이동할 수조차 없었고,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2020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반지의 제왕』 작가인 J.R.R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아르테 출판사)의 공동번역자로 기재되어 있다. 박현묵은 톨킨 팬카페 ‘중간계로의 여행’에서 ‘팩팬’이라는 닉네임으로 5년 동안 100건이 넘는 번역 글을 올렸다고 한다. 번역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완역까지 함께 한 것이다. 그 후 2021년 서울대에 수시 합격하여 입학하게 된다.
P.015 “보통 사람들에겐 아무 일도 아닌 관절과 장기에 생기는 내출혈은 종종 현묵을 사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의사가 보이에 그건 10대 아이가 견뎌 낼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묵은 그 기간 동안 놀랍도록 단단한 퇴적물을 만들어 왔다.”
P.061 “사회생활이 초등학교 6학년 이후 멈춰 있었으나 ‘시간의 몸’은 이미 열여섯 살이 된 현묵은 여기 사람들과 같이 ‘놀고’ 싶었다. 《중략》 다음 단계로 성장하고 싶었던 ‘초졸’ 현묵에게 인터넷 카페 ‘중간계로의 여행’ 가입은 상급 학교로의 진학과 같은 것이었다. 현학적이라는 표현은 어떤 똘똘한 10대의 지적 욕구를 드러낸 것으로 생각한다.”
P.270 “현묵은 ‘장애의 시계’와 분리된 ‘현묵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 톨킨을 만났을 때 그 시계는 본격적으로 자기가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반지의 제왕』은 모든 것과 연결된 문이었다. 《중략》 현묵과 얘기하다 보면 질투가 날 때가 많았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청년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젊음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장애는 느껴지지 않았다. 현묵과 인터뷰는 차라리 하나의 체험이었다.”
중증 혈우병을 앓는 청년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까? 세상에는 태어나서 사랑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생후 8일 만에 위탁모 가정에 맡겨진 아이는 친모가 직접 ‘정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8개월 후 ‘율하’라는 이름으로 양부모에게 입양된다. 8개월 후 16개월의 정인이는 800회가 넘는 학대를 당하고 사망하게 된다. 행정, 경찰, 아동기관 그 어디에서도 정인이를 구할 기회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포격으로 인해 산모와 아이가 함께 사망하고, 사망한 아동만 최소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무지막지한 가정폭력으로 맞다 맞다 도망 나와서 범죄자가 되어서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도 허다하다.
이 책은 어떤 불쌍한 청년이 보통 사람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성공기가 아니다. 80억 인구 중에서 같은 처지와 환경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왕족으로 수십조의 재산을 물려받는 이가 있고, 태어나자마자 전쟁터로 팔려가는 아이가 있다. 인간은 모두가 장단점이 있고 그것을 자신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극복해낼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예도 있겠지만, 자신의 처지만 비관하다 도움의 손길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꿈에는 계급이나 상향 선이 없고, 100% 이루어야 할 의무도 없다. 지금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현묵 청년처럼 집중하고 시도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신발 끈부터 묶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