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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평점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제목을 읽고 느낀 것은 이렇게 예쁘고 귀여워도 되나 싶었다. 원서의 제목은 『Object lessons』이고 15편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일을 감지했다. 차에 탄 가족의 다정한 목소리만 듣고도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당할 것을 알았다.” 「데니스 존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책의 가장 처음 등장하는 소설의 한 문장이다. 한국어판을 출판한 편집자의 제목선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시적인 표현을 좋아하는데 난해한 것은 싫어한다. 그런 점에서 데니스 존스의 문장은 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습작 시절의 나는 모든 문예지가 〈파리 리뷰〉 같을 거로 생각했다. 단지 몇몇 전설적인 단편소설과 인터뷰를 훔쳐본 게 다였지만 그렇게 상상했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꿀 것이다. 소설을 쓰면 〈파리 리뷰〉에 실리겠지? 〈파리 리뷰〉는 가장 문학적인 꿈이 실현되는 통로였고 그 꿈들이 지금 여기 현실이 되어 도착했다.” 「정지돈, 소설가」 책 소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파리 리뷰와 70년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The Paris Review』 1953년 「Harold L. Humes」이 파리에 설립한 분기별 영어 문학 잡지이다. 1973년 파리에서 뉴욕으로 본사를 이전했고, 2003년까지 편집자로 일했다. 파리 리뷰는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기법과 글쓰기 방식, 삶에 관한 진솔한 인터뷰 등으로 기존 문학 잡지와는 결을 달리했다. 타임스지는 ‘작지만 가장 강한 문학 잡지’라며 칭찬을 하였다.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스타일런」은 창간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고 한다. “파리 리뷰는 창의적인 작품인 소설과 시에 관한 비평의 배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문학 잡지들이 문학의 지배자 적인 장소가 되는 것을 제거하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파리 리뷰는 훌륭한 작가와 훌륭한 시인, 비주류 작가들이 좋은 글을 쓴다면 책으로 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리 리뷰를 거쳐 간 많은 작가 중에는 노벨 문학상, 맨부커상, 퓰리처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작가들이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그들이 책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파리 리뷰의 창간 정신이 있었다. ‘문학 실험실’로 불리며 70년을 빛낸 파리 리뷰의 단편을 한 권으로 만날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요란한 선동가나 음모꾼이 아닌 좋은 작가들과 시인들을 환영한다. 잘 쓰기만 하면 언제든지” 「파리 리뷰」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책의 처음을 시작하는 단편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를 쓴 데니스 존슨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Tree of Smoke』로 2007년 전국 도서상을 받았으며, 2008년 퓰리처상 최종수상자였다. 젊은 시절 마약과 술에 중독되어 방황하다 극작가와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02년 파리 리뷰에 단편이 소개된 이후 중편 소설로 출간된다. 1992년 출간한 『예수의 아들』은 2006년 뉴욕타임스 북에서 25년간 출판된 미국 소설 중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다. 세상에 묻힐 수도 있었던 그의 글과 책을 발견한 곳이 파리 리뷰였다.
명성이 높다 해서 무조건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극장판에서도 스크린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많은데, 영화가 중심이 아니라 극장에 의해 시장이 지배당하면서, 극장의 요구와 조건에 맞는 영화들만 상영되면서 좋은 감독이나 배우의 발굴을 어렵게 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갑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당연하게 보이는 현상이겠지만, 결국은 다양성과 신인의 발굴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일시적인 수익 뒤에는 작품의 질이 저하되는 결과를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유명해진 작가들의 초기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명성을 떠나서 잘 쓰인 단편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고를 때 흔히 하는 것이 작가의 이름이나 명성만 보고 고르는 것이다. 심지어 해당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천 명이 읽으면 천 가지의 생각이 나오는 것이 글이다. 그만큼 아무리 유명한 소설이라 해도, 나의 신념, 살아온 배경, 기타의 이유로 맞지 않는 책들이 존재한다. 이름을 떠나서 잘 쓰인 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