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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평점 :

“그리스 신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웅 오디세우스, 키르케는 그를 유혹하는 마녀로 스치듯 등장한다. 그러나 「매들린 밀러」는 키르케를 무대 전면에 내세워 그녀의 비밀, 매력, 불안, 고뇌, 사랑, 과감한 행동을 섬세하게 살려내, 전체 플롯을 매혹적으로 채워나간다. 전통 신화를 넘어 신화의 가능성을 새롭게 맛보고 싶다면, 소설 『키르케』는 기대 이상의 만족을 준다.” 「김헌 (고전학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있는 고전학자의 추천사이다. 픽션을 다루는 작가가 아닌, 논픽션을 연구하는 학자의 추천사라 궁금증이 들었었다.
「호메로스」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암흑기 말기에 활동한 시인이며, 서양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시각장애인이며 유랑시인이라, 그가 태어난 지역과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고 하며, 심지어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리아스』 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데, 두 이야기가 트로이 전쟁과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예가 중 한 명이며, 가장 넓게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며, 그리스 교육의 문화와 기초, 로마 제국 시대와 그리스도교 전파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근간을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브리태니커」
『오디세이아』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의 여정을 그린 서사시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소설로 불릴 수도 있고, 역사서로도 불릴 수 있다. 키클롭스 같은 괴물이 등장하지만, 트로이 공성전 1년의 이야기를 다룬 일리아스의 사실성 여부가 연구로 밝혀진 뒤, 오디세우스 또한 실제로 표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린 시절 『우주선장 율리시스』 만화영화를 KBS에서 방영했었는데, 호메로스를 모르던 당시에도 엄청난 스토리에 심하게 몰입했던 기억이 난다.
「오디세우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 자, 그리스 아래쪽의 섬들이 많은데 ‘이오니아 섬 제도 이타카’의 왕이다. 현명함과 지혜로 유명하며 트로이 전쟁의 전략가로서, 제갈량이나 사마의 같은 인물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트로이 목마를 제안하고 만든 사람이 바로 오디세우스이다. 실제적인 대 트로이 연합을 구성하게 하고, 트로이를 함락하게 한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그리스의 지도를 보면 현재의 트로이는 이스탄불 우측에 위치하고, 그 중간에 작은 섬들이 모여있는 곳이 이오니아 제도이다. 정말 가까운 거리인데,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20년의 세월이 걸리게 된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가호를 받았지만, 반대진영인 포세이돈의 괴롭힘으로 그렇게 표류했다.
『키르케』 그리스어로 독수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태양신 헬리오스와 페르세이스 사이에서 태어난 헬리아데스로 반신반인이라 하겠다. 헬리오스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자식이 있는데, 키르케의 족보를 보면 정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수준이다. ‘아이아이에라’는 섬에서 살았는데, 현재의 이탈리아 ‘폰자섬’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녀의 직업은 마녀이고, 취미는 사람들을 짐승으로 만들고 부리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의 묘약 제작 의뢰를 받았다가, 오히려 자기가 사랑에 빠져 의뢰자를 머리 여섯 달린 뱀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역시 마녀답다. 질녀인 메데이아가 사람을 죽인 것을 매우 화를 냈는데, 키르케는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그녀의 섬에 표류하게 되는데, 돼지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지만 마법이 통하지 않고 역으로 당하게 된다. 아름답지만 남자 복이 없던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배려에 사랑하게 되고, 1년 동안 살면서 자식을 가지게 된다. 그 아들의 이름이 ‘텔레고노소’인데, 한번 검색해보면 엄청난 가족사의 비밀이 또한 있으니….
“맨 처음 태어났을 때 나에게는 걸맞은 이름이 없었다.” 태양신의 딸이자 오케아노스의 외손녀이지만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하급 여신 님프일 뿐이고, 님프의 유일한 힘은 타고는 미모이다. 님프의 생존법은 미모로 남신을 유혹하여 신들의 모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님프들은 이러한 생존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키르케는 이를 거부한다. 글라우코스를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어떤 ‘능력’을 있음을 각성하지만, 기존 질서에 반하면 눈 밖에 나기 마련이다. 신들의 눈 밖에 난 키르케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마녀’로 불리며 무인도에 유배돼버린다. 근대이전에 여성들은 글공부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현, 최초의 박물학자 마리아 메리안 등 재능있는 여자들은 죽음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외부에 재능을 숨기고 살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안에서 그 재능을 꽃피우고 있었다. 키르케가 유배된 섬에서 그러한 자신의 삶을 찾고 있었다.
남성 위주의 서사시에서, 살짝 여성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서사시이다. 편견과 차별은 다양성을 제약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국가나 민족은 모두 종말을 맞았다. 우리는 지금 남성이 아닌 여성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