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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디스토피아(dystopia, anti-u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처음 말이 쓰인 곳은 영국 정부의 아일랜드 억압정책을 비판하면서 비롯되었다. 전체주의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사회를 묘사하며, 개인의 인간적인 삶은 정부에 의해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회이다. 유토피아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면, 반대말인 디스토피아 또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까? 우리가 중국과 북한의 사회시스템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미얀마의 군부 사태는 그 배경에 중국의 개입이 있다고 한다. 북한을 제외하고서도 중국의 세계와 소통이 통제된 채 살아가는 것에 만족할까?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는 SF 세계관의 중요한 소재들이다. 디스토피아가 문명이 존재하는 통제되는 사회라면, 아포칼립스는 전쟁이나 전염병 등의 원인으로 문명이 완전히 붕괴한 세상을 말한다. 매드맥스 같은 영화의 세상이나, 핵전쟁 이후의 북두의 권,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워터 월드 같은 세상들이 있겠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두 세계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들이 처한 시스템에 대하여 저항이나 재건을 통하여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디스토피아-아포칼립스-유토피아, 디스토피아-아포칼립스-다시 디스토피아 등 다양한 세계관을 이동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오가와 요코 (1962년~ 60세) 일본 오카야마현 출신의 소설가이다. 일본 최고의 와세다 대학교 문예과를 졸업한 수재이며, 1988년 데뷔작 『상처 입은 호랑나비』로 가이엔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1991년 『임신 캘린더』로 아쿠타가와상, 2003년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요미우리 문학 대상을 받으며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일본에서 영화가 제작되고, 『약지의 표본』은 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2007년부터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으며, 여러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맡으며 일본 문단의 중견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은밀한 결정』은 영국의 맨부커상, 미국의 전미도서상 국제상 부분 모두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은밀한 결정』 저자의 어린 시절 독서의 길로 이끌어 준 『안네의 일기』를 오마주로 하고 있다. 나치즘과 부당하게 자유와 목숨을 잃은 유대인들,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머리카락부터 이름까지 모조리 빼앗기고 독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소설의 배경은 디스토피아 적인 비밀경찰이 등장하는 시스템이지만, 무대는 고도화된 문명이 아니라 마치 한적한 시골 바닷가의 풍경으로 묘사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겪은 후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만들어진 그러한 느낌이다. 소설에서 가장 인간을 체념하게 만드는 것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보다, 기억 그 자체를 소멸당하는 고통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이라는 근거는? 내가 느끼는 행복과 성공이라는 것을 향해 열심히 사는 것들의 이유는 바로 기억이다. 90년을 신앙생활을 해온 권사님이 치매에 걸려 신을 부정하는 것을 보았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어쩌면 삶의 전부일 수도 있는 기억을 소멸당하는 세상. 소설은 이 세상을 어떻게 결말 내릴까? 디스토피아의 파괴인가?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유토피아로의 저항인가?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 보길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