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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3 - 갑오년 농민군, 희망으로 살아나다 ㅣ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3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7월
평점 :

“역사는 세상과 소통하는 실천 학문이에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해요. 역사를 모르면 미래를 열어갈 수 없어요.”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 中
이이화 (대구, 1937~2020, 84세) 역사문제연구소 소장과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이기도 했다. 2015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노교수의 삶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동학혁명을 단순히 질서에 반하는 무력시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실천의 동력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전봉준이 순국한 뒤 그와 관계된 인사는 모조리 핍박받았고 후손들도 떠돌이로 살아야 했다. 본가인 천안 전씨와 처가인 여산 송씨는 목숨을 건졌더라도 재산을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다.” 비단 전봉준의 후손들만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많은 농민군의 후손은 핍박 박고 떠돌아야 했다.

1929년 친일파 이규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는다. 2020년 2월 법무부는 이규원의 후손을 상대로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4월 법원은 ‘땅이 국가의 것이 맞다’라는 취지로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2010년부터 총 17건의 소송에서 이겨 친일파 땅 300억 원가량을 환수했다. 1910년 일본에 귀족 작위를 받은 이해승의 후손은 300억 원이 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정부는 2007년 14년에 걸쳐 소송전을 했고, 이해승 후손의 토지를 환수했다. 그러나 2010년 대법원은 국가에 ‘돌려줄 필요가 없다’라며 후손의 손을 들어준다. 이곳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친일파를 처리할 수 없는 것은 마치 일제식민지의 국가를 계승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살아남은 동학 농민군과 후손들은 항일 의병과 3.1혁명에 참여하는 주축이 된다.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을 기점으로 1895년 대전 유성에서 문석봉의 의거로 시작한다. 남한산성을 점령하고 서울 진공계획을 수립하지만, 고종의 해산 조칙이 내려져 1896년 전후로 위축 종료되게 된다. 전기 항일 의병은 주로 반침략·반개화를 주창하는 유생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농민군 출신의 평민이 지휘부에 참가하기도 했다.

중기는 1904~1907년 한일의정서와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국권 침탈이 고조되자 재차 항일 의병이 황동에 나선다. 특히 평민 출신의 신돌석이 봉기하여 전과를 올렸으며, 양반과 평민이 지휘부와 병사에 모두 포진하여 신분상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후기는 1907~1910년 헤이그 특사 사건을 명분으로 고종이 강제퇴위 되고,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되자, 군대가 함께 의병에 참가하게 된다.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는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 3달에 걸쳐 서울근교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최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해산하게 된다. 이후에도 홍범도, 채응언 등 많은 항일 의병의 활약으로 연속된다. 이와 같은 항일 의병은 일제의 주권 강탈을 늦췄으며, 향후 전개될 국내외 독립운동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이처럼 갑오년 농민군들은 일제와 나라를 팔아먹은 양반들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을 이어나간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된 일본과 미국 및 여러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걸쳐 해방을 맞이하게 되나, 농민군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의 경우 나치 지배에서 벗어난 후 ‘협력행위 처벌에 관한 명령’을 만들고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에 대해 재산몰수를 명령했다. 기록상 당시 드골은 나치 부역자 약 1만여 명을 처단하였다고 한다. 언론인과 지식인, 정권의 고위 관리들을 숙청한 후 가계에 뿌리박은 나치 협력자 또는 부역자들을 철저히 숙청하였다. 1944년 말에 5천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403명의 판사가 나치 협력혐의를 받았다. 이것은 프랑스 전체 판사의 17%에 이르는 수치였다. 반면 이승만은 정권의 안정화를 위한다며, 친일파 출신의 경찰과 관료들을 대거 임명하여 오늘날 같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는 나라를 만들고 말았다.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인간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집 앞마당도 아니고 시키지도 않는데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위협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많은 그곳에서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 세상은 순리가 아닌, 이기적인 자들이 그 혜택을 모조리 삼키고 있다. 수 대에 걸쳐 목숨을 걸고 지켜온 나라가 친일파 후손 땅 1필지를 환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하에서 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