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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평점 :

박노해 (함평군, 1957~ 64세) 시인이자 사진작가 노동운동가이다. 1984년 <노동의 새벽>이라는 첫 시집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었다. 금서인 만큼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렸다. 1991년 노태우 정권 때 사형을 구형받고 웃는다….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서 집필하다 문민 정권이 들어서고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다. 국가보상금을 거부하고 20년간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쳐왔다.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면 그냥 전설이다.

“돌아보니 그랬다. 나는 늘 길 찾는 사람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이었고 ‘걷는 독서’를 하는 이였다. 책의 제목을 이해하는 서문이었다. 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소개를 읽으면서 이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린 지금 너무 많이 읽고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다. 잠시도 내면의 느낌에 머물지 못하고 깊은 침묵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찍어 올리고 나를 알리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인정을 구하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를 적어보라. 제일 경멸하는 열 개의 단어를 적어보라.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다.” 고작 스무 개의 단어를 적는 것에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에 놀랐다. 좋아하는 것보다 경멸하는 것을 적는 게 더 쉽다는 게 나를 말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가장 처음 떠올리는 단어가 나의 아킬레스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말한다. 의리를 생명보다 중요시하는 폭력배는 배반으로 두목의 자리에 오르고,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은 자기 배 채우기가 바쁘다. 다른 누군가의 인생의 말이 있다면, 그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라. 그 말이 나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가진 것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비우면 비울수록 내 그리운 것에 마음을 두게 되었다.” 왜 그들은 가지는 것을 멀리하고, 계속 비우라고 말을 하는 걸까? 기억을 가지면 행복이 된다. 사랑을 가지면 용기가 생긴다. 자녀를 가지면 목숨을 걸고 책임감이 생긴다. 가짐과 비움의 경계를 명확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가지는 것에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비우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오히려 2,000년 전의 자연과 융합, 물 하는 듯한 유연함이, 경계가 없는 학문이 더욱 주목받고 있으니 말이다. 인위적으로 가지거나, 버리거나 없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싶다.
『걷는 독서』는 자신의 소신대로 평생을 살아온 시인 박노해의 시집이다. 무엇보다 시인의 편안한 생각과 소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그리고 낭만이 있는 시집이다. 억지로 운율을 맞추고, 글자와 열을 맞추고, 문장을 맞추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이 전해진다.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두고 눈길이 갈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읽고 싶은 그러한 시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