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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3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7월
평점 :

레프 톨스토이 백작(러시아, 1828.09.09.~1910.11.20.) 소설가이자 철학자이다. 대표작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이 있다. 단편 <지옥의 패망과 부흥>에서 교회를 악마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고, <부활>에서는 성체성사를 마술이라고 조롱하여 러시아정교회에서 파문당했다. 지주로서 토지를 농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했고, 말년에는 농민과 같은 삼을 살겠다 하였으나, 태생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80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교우가 있던 비폭력의 대명사 간디는 태생적인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았던 만큼, 귀족으로서 톨스토이의 농민에 대한 생각과 행동은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톨스토이 만년의 작품인 이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귀족의 생활과 기독교의 교리를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기 위한 종교이다. 구원이란 현세의 삶에서는 죄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서는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의 인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증명하셨듯이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부활 그 자체입니다.

루카 복음서 2장 12절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세상에 오셨다.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해 세상에 오셨지만, 이 책 어디에서도 낮은 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감옥이나 지옥밖에 없다.

폭력과 착취가 난무하는 70년대의 사창가. 고향의 기억도 그저 어렴풋한 17세의 영은은 이곳 사창가 골목으로 끌려 온다. 사내들의 무자비한 길들이기를 통해 윤락녀로 태어나고 어느새 사창가의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착한 손님 길룡은 아픈 영은에게 약을 사다 주고 고향을 찾아주겠다 약속한다. 영은은 술집, 탄광촌, 산사 유흥가, 섬 등으로 떠돌게 되고 또다시 빚을 지고 심신이 병든 채로 사창가로 돌아오게 된다. 다시 찾은 길룡에게 포주들은 자신이 이곳 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잡지 않는다며, 길룡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달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노는 계집 창>
까쮸사를 묘사한 장면은 100년이 지난 사창가의 영은과 너무나 닮았다. 사생아로 태어나 버려지고, 귀족의 하녀로 살면서 그들의 삶을 동경하며 살게 된다. 귀족의 조카인 네흘류도프에게 강제로 처녀를 빼앗기게 된다. 그의 아이를 가진 까쥬사는 그의 사랑을 진심이라 믿으며, 떠나가는 열차를 쫓으며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100루불에 버려진 까쥬사는 귀족의 집에서도 내쳐지고, 태어난 사생아는 곧 죽어버린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굶주림에 몸을 파는 창녀가 되게 된다. 세상 가장 천한 취급을 받으며 지금은 살인의 혐의를 받고 재판장에 서게 된다. 세상 그 어디에도 그녀를 위한 구원은 없었다.

고모의 집에서 본 하녀는 신비롭고도 예뻤다. 어린 시절 자주 함께했으며, 어느 순간 첫사랑의 감정도 느끼게 된다. 네흘류도프는 청소년 시기부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고민을 하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귀족으로 사는 삶을 살면서 폭력적인 군대를 경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휴가차 들렀던 그 날 그에게 있던 것은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운 성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를 범했고, 100루불을 던지고 떠나왔다. 십 년이 지난 지금 배심원이 된 자신의 앞에 죄인의 모습으로 그녀가 서 있다. 자신으로 인해 그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의 양심은 더는 숨을 곳이 없게 된다. 까쥬사를 구원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해결할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네흘류도프와 배심원들은 그녀가 살해의 동기가 없음을 모두 인정합니다. 형법은 행위와 의도 두 가지를 충족해야 처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의도가 없이 행위만 일어나면 과실이기에 형을 가볍게 집행합니다. 배심원들의 실수가 있었고, 재판부는 창녀의 의도 따위는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바로잡을 기회가 여러 번 있지만 까쥬사는 시베리아로 보내지게 됩니다. 100년이 지나도 지강현이 외치던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그대로 반복됩니다.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같이 죄를 지었는데, 돈이 없다고 수십 년 감옥살이하고, 대통령의 동생이라고 풀려나는 것이 법이냐는 그의 말을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고 2000년이 흘렀어도 세상 가장 낮은 자는 감옥이나 지옥으로 밖에 갈 수 없듯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