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비를 그리는 소녀
조이스 시드먼 지음,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그림, 이계순 옮김 / 북레시피 / 2021년 7월
평점 :

이 책은 두 사람을 알고 가야 합니다. 글을 쓴 작가와 그림을 그린 메리안입니다.
조이스 시드먼은 1956년 미국 출신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노래하는 오늘날 최고의 시인이다. 각종 어린이 시 관련 상을 수상 하였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 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마음이 아는 것: 성가, 주문, 축복』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고 [LA 타임스] 북어워드 최종 리스트에 올랐다. 아이들의 할머니 같은 작가임을 느꼈습니다.
마리안 지빌라 메리안은 17세기 박물학자이자 예술가이며, 곤충을 연구한 최초의 학자로 알려집니다. 186종의 생애 주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기록하였는데, 연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모두 가지는 훌륭한 작품들입니다. 그녀의 나비와 나방 분류법은 오늘날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추천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든 연령대의 독자에게 위로와 영감, 용기를 주는 책. 시드먼은 꼼꼼한 자료 조사 때문에 메리안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메리안의 글에서 발췌한 인용문은 이 용감한 예술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재능 이쓴 여성 박물학자의 초상화가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퍼를리셔스 위클린》
이 책의 분류가 청소년 역사/인물로 되어 있는 게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책을 받고 그림을 보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훌륭한 곤충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많지 않은 글이지만 마리안의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의 삶을 읽으면서,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저에게는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처음 간직한 꿈을 끝까지 이루어가는지 숭고한 울림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단순히 취업이 꿈이 되어버린 요즘의 젊은이들과 꿈을 잃어버린 기성세대 모두에게 꿈은 이렇게 이루어간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안이 살았던 시대는 신성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국가와 도시들이 주축으로 연합제국을 형성하였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 있어서 가톨릭은 국교가 아닌 국가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반하는 학자나 종교인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여도 마녀사냥으로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여자가 곤충을 수집하여 연구하고 그린다는 것은 교회의 ‘자연발생설’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이므로 감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성의 인권이 많이 회복된 현시대에서도 현직 여검사도 상사의 추행에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호소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어린 마리안은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식물과 곤충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곤충을 관찰하는 것은 하찮은 일이거나, 아주 지루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곤충은 땅에서 난다는 말에 마리안은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관찰과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고, 그것이 틀렸음을 증명해 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차근차근 평생을 이루어 나갑니다. 여성이 학문이 금기시되는 시대에서 급하게 사실을 발표했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고, 그 평생의 긴 관찰과 기록이 의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리안은 아슬아슬한 그 경계에서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조용히 기다리며, 소녀적 꿈을 계속 이루어 나갑니다. 그리하여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나방과 나비의 분류법이 쓰일 정도로 훌륭한 성과를 내었습니다.
마리안이 한 곤충을 관찰하고 그린 일은 그녀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족사와 어려운 환경에서도 끝까지 이뤄내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림을 그린다고, 음악을 만든다고, 도자기를 굽는다고 하여 사람의 먹고사는 것에 큰 영향을 주는 것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영감을 주고, 행복을 줍니다. 마리안의 저 기나긴 꿈의 여정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합니다. 책을 통해 배웁니다. 내가 가진 꿈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인 것을요. 내가 하는 일을 귀하게 여긴다면 그 자체로서 빛나는 것을 말입니다.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고 꿈을 잃은 분들이 꼭 마리안의 삶을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