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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 치료감호소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
차승민 지음 / 아몬드 / 2021년 7월
평점 :

국립법무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국립법무병원에서 매일 170명에 육박하는 범법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로 지금까지 4년간 일했다. 이 책은 ‘치료감호소’로 널리 알려진 국립법무병원의 내부 이야기를 담은 첫 대중서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삼 깨닫습니다. 무심코 이름만 보고 남자 의사일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단아한 여자 의사이셨습니다. 이 순간 책을 읽음에 틀어박힌 상식이나 편견 없이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부분은 알코올중독과 성격장애와 범죄라는 목차를 보고서입니다. 조현병이나 사이코패스는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완전 중범죄를 저지르지만, 위 두 사례는 정말 답도 없습니다. 겪어보면 사는 내내 지옥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고 사법적으로 경찰이 관여하지도 못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간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거의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습니다. 전문의인 저자는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는지를요.
『정신과 의사에게 유독 치료가 힘든 질환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알코올중독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우선 알코올중독은 치료 효과가 좋은 약물이 딱히 없다. 물론 갈망을 줄여주는 약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조현병이나 조울증처럼 약물치료로 극적으로 호전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들도 질병으로 취급하긴 하지만 그저 나쁜 습관 정도로 본다.』 의사들도 자신이 겪는 상황이 아니므로, 나쁜 습관 정도로만 본다는 것에 정말 답답했습니다. 술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죠. 중독은 환자의 인식과 의지가 치료의 중요요소인데, 알코올중독자엔 그러한 것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경찰들도 그냥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강력범죄의 불씨를 품고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나라는 유독 술로 인한 범죄에 관대하다. 음주운전은 살인행위이다. 하지만 사고로 처리하는 법이 문제이며, 술로 인한 가정폭력도 훈방 처리하고 만다. 술로 인한 범죄는 심신미약이 아닌 동기와 행위가 일치하는 강력범죄로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사람들이 대인 관계를 맺으면서 종종 “저 사람은 성격이 더러워”라고 말한다. 성격이 더러운 것도 병인가?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맞다. 성격이 너무 더러워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고 자기 인생도 괴롭히고 있다면 성격에 병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격은 무엇인가? -중략- 이런 성격이 너무 이상해서 주변 사람이 힘들고 자기도 힘들고 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 바로 ‘성격장애’다. 성격장애는 결국 성격의 병이기 때문에 정신질환 중에서도 상당히 치료가 힘들다.』 알코올중독과 성격장애가 만나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십시오. 치료가 힘든 질환 두 가지가 고쳐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정이나 사회에 돌려보내 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정신과의 난치병’이라는 말에 동감하게 됩니다. 뉴스에 대형산불 소식이 나올 때면 대부분 원인이 사소한 담배꽁초 내지는 인재에 의한 작은 실수들입니다. 수십 아니 수백 년 키워온 산림이 순식간에 타버리는 순간입니다. 꽁초 버리는 시간은 1초이지만, 타버린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선 100년이 걸립니다. 위의 두 가지의 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내일이 아니라 하여 가벼이 여기고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 둔다면 결국은 그 불씨는 내 발 앞으로 떨어져 화마로 돌아올 것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먹먹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쾌하지 않지만, 책의 제목처럼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그 말 그대로의 느낌입니다. 저자 혼자 170여 명의 이런 환자들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애처로운 생각도 듭니다. 수십 년 전 지존파 사건을 아십니까? 도시가 더 커지고, 사람이 더 늘어나고 점점 더 복잡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각자 경호원을 고용하고 다녀야 하는 세상이 되어야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요? 저자는 우리에게 그런 숙제를 내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