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답이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하는 것이라네. 남이 던져준 답은 어차피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불과해. (p.48-49)

★ 이제는 알았겠지. 왜 자네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지, 왜 단점에만 집중하며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것은 자네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일세. (p.79)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것은 내 과제야.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고.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거기에 개입할 수 없네. (p.189)

★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어.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네. (p.261)

'인간은 오늘이라도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p.8)하는 철학자에게 한 청년이 찾아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 콤플렉스와 비관적인 인식으로 가득 찬 청년은 철학자의 주장에 반박하고자 하는데요. 철학자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아들러의 심리학을 청년에게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 철학자,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열띤 대화 속에서 소년은 점차 자신을 둘러싼 고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데......

기존 위로 서적들에 반기를 드는 '거룩한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입니다. 국내 출판될 당시 '미움'과 '용기'라는 다소 상반되는 의미의 단어를 결합한 제목이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는데요. 파격적인 제목만큼이나 이 책은 '괜찮다', '당신이 옳다'라고 이야기하던 기존의 힐링 서적들에 대해 부정하는 파격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불행에 대해서

'하지만 지금 자네가 불행한 것은 자네 손으로 '불행한 상태'를 선택했기 때문일세.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p.55)

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무리하게 자신을 바꾸지 않는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문장 또한 뜻깊게 읽은 글귀 중 하나였습니다. 저로서는 이 책에서 나오는 청년이 완전한 타인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던 탓인지, 후기에서 '거룩하다'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은 상당히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에 관해서 '허황된 이야기다', '현실에 맞지 않는 공상적인 이야기다'라고 이야기하시는 독자분들의 반응도 보았습니다. 철학, 심리학 책이 원래, 한 사람이 모든 진리를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에, 또 논리라는 것은 비논리로 가득 찬 현실에 언제나 통용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에 '거룩한 가르침'이라는 후기를 붙인 데에는, 이 책이 기존의 서적들이 기피해 왔던 '싫은 소리'를 '논리적으로' 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던 기존의 위로들에 대해 아들러의 심리학은 '과거는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라고 단번에 위로의 여지를 끊어버립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줌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위로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에 주목할 만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거북한 문장'

그러나 상술한 호불호의 문제와 달리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단점은 사실 분명합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열등 콤플렉스에 빠져 있고, 가정이 그다지 화목하지 않으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청년'과 그의 논리를 전부 뒤집어버리는 '철학자'의 대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구성을 취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이러한 구조가 가독성의 측면에 있어서는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헌데 대화 구조라는 형식을 갖추게 되면서 이 책의 문장들은 읽기에 디소 '거북해졌습니다'. 철학자는 '청년'이 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뒤집어엎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청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논리가 부족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태도로 논쟁에 임하고 있습니다. 당장 청년의 대화에서 사용되는 느낌표의 개수만 세어본다고 하더라도 이 청년이 얼마나 '아들러의 철학으로 갱생받아야 할 감정적인 존재'로 설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철학자 또한 이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인데, 충분히 견제해줄 논리를 청년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철학자 또한 독자가 보기에 '어라?' 싶은 논지들을 마구잡이로 펼쳐나가게 됩니다때문에 서적에서 등장하는 논리에 반박을 제시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 되어버리고 이 점이 분명히 피할 수 없는 비판점에 해당합니다.

작가가 설정한 두 등장인물의 토론 구도는 어떻게든 작가의 의도에 따라 승자가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대화 형식이 독자들에게 의미 있게 와닿으려면, '청년'과 '철학자'의 논리가 충분히 대등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채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집어삼켜지는 이와 같은 구도는 다음에서 인용하고 있는 대화만큼이나 기성세대의 계몽주의 서적들과 닮아 있어, '거북합니다'.

철학자 : 젊은 벗이여, 나와 함께 걸어가지 않겠나?

청년 : 걸어가지요, 함께! (p.321)

<미움받을 용기>라는 제목만큼이나 파격적인 이 서적이 좀 더 독자들에게 수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차라리 두 사람의 관계를 '선생-제자' 등 협력 관계로 설정하든지, 혹은 저자가 전개하는 지식들이 지닌 한계를 명백히 하기 위해 '청년'의 태도를 다르게 설정하든지 등 나름의 객관성을 부여할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게 되네. (...)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네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 (p.307-308)

이렇듯 형식의 측면에 있어서 일말의 거북함을 끌어안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입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실린 '팩트 폭력'들마저 거북함을 이유로 그냥 넘길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만약 이 책을 읽으신다면 거북한 구성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들만 취사선택'하시기를 권유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완벽한 방안이라는 것은 이 책에도 마찬가지로 없습니다만, 비논리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논리는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데에 있어서 유의미한 단서를 제공해줄 것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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