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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조영복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2월
평점 :
우리는 글을 쓴다. 보고서를 쓰고, 논문을 쓰고, 연애편지를 쓴다. 우리가 쓴 글은 그것이 담고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잘 쓰지 못한 글은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을 퇴색시킨다. 업무 성과가 작아 보이고, 연구 결과가 빛나지 못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이런 아쉬운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글을 잘 써야 한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다. 글쓰기에 관심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태준의 <문장강화>도 있고, '글쓰기 책이 이렇게까지 재밌어도 되나?' 싶은 것으로 유명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있다. 최근에는 유시민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유시민 작가는 천재류라 우리 같은 범재들을 위한 글쓰기 책이 필요하다'라고 농담삼아 말하는 강원국의 글쓰기 시리즈도 있다.
이런 글쓰기 책을 찾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지만,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써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는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라는 부제에 걸맞게, 그중 후자를 위한 책이다.
저자 조영복은 이 책에서, 다년간의 대학 강의와 기업 특강을 통해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글쓰기 초보들이 마주하는 문제들을 다룬다. 이 문제들은 우리가 글을 쓰는 하얀 백지 위에 실재한다. 치열하게 고뇌하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쓴 문장, 남이 쓴 글에서 볼 수 있는 실재하는 문제들이다. 글쓰기 초보들은 이런 어색한 문장들, 어딘가 이상한 문장들을 나도 모르게 쓰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모르는 답답함에 이 책을 꺼내들게 될 것이다. 배움에 있어서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단계'를 빠르게 벗어나는 것은 배움의 속도에 가속도를 더해준다. <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는 풍부하면서도 적확한 예시와 모범 답안들로 그 단계를 빠르게 벗어나게 도와준다.
- ... 그런데도 그들이 아쉬워하는 점은 실제 글을 쓸 때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 '실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특히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거나 비문과 오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에 이 '갈구'가 더 깊다. -5p
- 2부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의 주제를 다루었다. 우리가 쉽게 부딪히는 문법 오류, 문장 오류, 문장의 비논리성 등을 각 테마별로 나누어 세심하게 다루고자 했다. 대부분 초보자가 처음 글을 쓸 때 부딪히는 '실재하는 문장 오류'들이다. - 6p
틀리지 않은 문장을 쓰면 잘 쓴 글이 될까? 아니다. '검지 않은 색'이 '흰색' 뿐이 아니듯, 틀리지 않은 문장이라고 모두 잘 쓴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색하지 않은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면 이제 글의 구조와 조직, 리듬과 가독성을 신경 써야 한다. <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는 그런 어려움도 이해하고 3장에 담았다.
- ... 그러니 우리말의 문법 규칙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우리말의 소리를 감각하는 그 리듬감을 깨우치도록 시 교육을 혁신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너절한 문장을 '독서'하기보다는 우리말 문장으로 쓰인 짤막한 소월시를 읽는 것이 정확한 문장을 쓰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말의 리듬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것이 좋은 글을 쓰는 한 방법인 것이다. - 206p
글쓰기에 대한 책이라고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책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은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이면서도, 글쓰기를 주제로 한 저자의 에세이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라틴어 공부를 주제로 한 인문학 서적인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이나, 문학 쓰기 방법론을 주제로 자신의 작가 생활 에세이를 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과는 달리 바른 글쓰기 방법을 제시한다는 책의 목적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지루할 틈 없이 수업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진도는 놓치지 않고 나가는 훌륭한 교수와도 같다. 그것도 농담과 수업 내용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교수 말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경험이나 다른 매체 - 예를 들어, 영화 레 미제라블을 패러디 한 공군의 레 밀리터리블 등 - 를 끌어와 해당 부분에서 다루는 문장 오류와 연결시킨다.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 지어진 나머지, 어느 한 쪽이 없이는 다른 한 쪽이 불완전해 보이기 까지 한다. 이런 글의 스타일은 쉬운 문장, 짧은 호흡, 다양하고 자세한 예시들과 함께, 이 책을 읽기 쉽고, 읽고 싶게 만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것은 업무의 결과일 수도, 새로이 밝혀진 원리일 수도, 전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글이 무언가를 전달하는 수단이라면, 글쓰기는 그 수단을 만드는 과정에 불과할 따름이다. 과연 그럴까? 음식을 담기 위해 만든 도기가 그 자체로 예술이 되듯,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글은 그 자체로도 감탄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글을 쓰는 글쓰기라는 행위 또한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나 또한 글을 여러 해 써왔지만, 아직도 글쓰기를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를 전공하고 평생 글을 써온 저자도 단언하지 못하는데 어찌 나라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을까. 다만, 사유와 고행이 생산적으로 만나는, 이 글쓰기라는 행위를 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조금 더 선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매번 글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느껴지는 부끄러움이 다음 글을 쓸 때에는 조금 덜 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좋은 문장에 대한 기억은 존재의 미천함과 현실의 비루함을 넘어 삶의 숭고함으로 우리를 이끈다 - 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