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잡다
이행희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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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의 경주가 시작되었다. 차창밖 양쪽으로는 낮은 나무와 풀이 깔린 끝없는 초원이다. 사방은 어스레하고 가로등도 없는 도로를 따라 차는 더욱 속력을 낸다. 길바닥에 설치된 야광판에서 반사된 푸르스름한 빛만이 주변을 밝혀준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은 검은 하늘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점점 세력이 줄어든다. 압도적으로 펼쳐진 어둑시근한 하늘에는 잿빛 구름 덩이들이 짙게 들러 있다. 세찬 겨울 바람속으로 달려가는 길 끝에 아기 포대기만 한 노을이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노을을 쫓는 중이다.
 12사도에서 저녁노을을 맞이한 것이 10여분 전이었다. 십이사도는 호주 남동부의 해안도로인 그래이트오션 로드 중 가장 유명한 전망 포인트로,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의인화한 바위들의 이름이다. 거센 바람과 파도에 오랜 세월 깎여 생긴 독특한 행태의 바위들이 바닷물 중간에 우뚝우뚝 서 있다. 높은 절벽을 이루는 해안선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이 장관이다. 
 일몰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게센 해풍을 막아주는 섬  하나 없는 지라 나무들은 모두 나지막하게 휘어져 자란다. 땅에 붙은 사초들이 곳곳에 무성했다. 들쑥날쑥한 해안 절벽 위 전망대에 섰다.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과 대륙의 끝없는 해안선에 말을 잃었다. 열두 바위 중 한 바위가 침식에 부서져 내려 디딤돌처럼 낮아 져 있었고, 그 주위로 잔해가 둘러 있었다. 이름만 12사도일 뿐, 이제는 11사도인 셈이었다.  
 이윽고 해가 지기 시작했다. 층층이 무늬 진 바위 절벽에 낙조가 비쳐 거대한 절벽이 온통 황금빛으로 빛났다. 어느 순간 나도 황금빛이었다. 클립트의 그림 속 금빛 여인이 되어버린 듯하였다. 바위 속 특성 성분으로 인해서 이런 빛이 난다고 했다. 이윽고 하늘과 바다가 함께 진흥빛으로 타올랐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결에 노을빛이 섞여 하늘도 바다도 붉게 출렁거렸다. 절벽 위로 오색무지개가 떴다. 그 장엄함에 어느 신전에도 발을 들이지 않는 내가 경건하게 기도를 드렸다.  
  
 -노을을 잡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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