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문천 살인사건 - 토정 이지함, 개정 보급판
허수정 지음 / 신아출판사(SINA)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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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시(오후 1시경).

 

날씨는 흐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한바탕 퍼부을 것만 같았다. 이지함은 낮게 드리운 먹구름을 올려다보면서, 비가 오면 시원해지려나, 하고 중얼거렸다. 어제는 여름처럼 더웠다. 봄인데 벌써부터 이러니 올 여름 더위야 오죽할까 싶었다. 추위보다야 덜하긴 하지만, 찌는 듯한 날씨도 가난뱅이들에겐 반갑지 않다. 음식도 쉽게 부패한다. 쉰밥도 물에 씻어 먹을 판국인데, 눈앞에 있는 먹을거리라면 상했든 말든 일단 입안에 넣고 보는 게 없는 사람 처지이거늘……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를 싸안고 나자빠질지…… 생각할수록 연민이 가슴을 싸늘하게 한다. 이지함은 무겁게 숨을 내쉬고 말았다. 언제쯤이면 세상이 청명해지려나.

 

문득 죽은 윤인성이 생각났다. 그도 맑고 밝은 세상을 꿈꾸었던 건 분명했다. 그게 도학의 세상이든 뭐든 간에, 그런데 왜 승려가 되었을까? 불문의 가르침이 꿈꾸는 세상과 들어맞았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확실한 건 새로운 세상을 염원했던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찌푸려진 하늘처럼 이 사건도 몇 겹이나 먹구름 같은 음모가 깔려 있을 듯했다.

 

사실, 김기민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켜켜이 층운이 깔린 사건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범인의 윤곽조차 그리지는 못했지만, 상상을 불허할 만치 허를 찌르는 배후가 먹구름 뒤로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은 두 사람과 접점을 이룬 심의결과 보우의 존재, 그리고 윤원형을 떠올려 보면 분명 지나친 느낌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윤인성은 보우의 측근이라고 했다. 하면 보우가 꿈꾸는 세상은 뭘까? 이지함은 자기도 모르게 보우, 라며 되뇌고 있었다.

 

그때 잔뜩 골이 난 안색으로 명석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지함이 손을 번쩍 들어 주었다.

 

"이사람 왜 이렇게 늦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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