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사과나무 그늘에 누워있었다. 나뭇잎 사이의 하늘은 작열하는 태양, 눈부심이었다. 전쟁 포화가 비구름을 쫓아버리기 때문일까. 날씨는 계속 가물었다. 하늘은 계속 타고 있었고 땅은 끝없이 목말랐다. 그러나 사과나무 잎은 푸르렀고 열매도 조롱조롱 열려 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름을 살고 있는 끓는 하늘도 잠잠했고 땅은 더욱 잠잠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전쟁은 어디쯤일까. 전쟁은 정말 있는 것일까. 살육과 파괴와 고문이 정말 있었던가. 팔월도 이십일을 넘어 하순으로 기울고 있는데 전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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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잎이 검푸른 빛을 잃고 따뜻한 주황빛으로 물이 들어가며 열매가 익어가는 빛이 멀리서도 잡힐 만큼 선연해지는데, 푸른 하늘을 이고 있던 산들은 검누렇게 시드는 빛으로 겨울 옷을 입기 시작했다. 기도를 잃은, 아니 기도가 불가능해진 나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어, 가을로 변색되어가는 계절이 내 영혼을 더욱 시리게 만들고, 추위에 떨고 있는 마음을 기댈 곳 없게 만드는 것만 같네.
- 중략 281쪽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