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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
태혜숙 외 지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은 서구추수적인 인식론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여성주의 시각에서 한국의 식민지 근대를 재조명하려는 여이연판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약칭) 탈식민 페미니즘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보편적인 기획으로 행세해왔던 서구적 근대성을 "젠더" 관점에서 새롭게 읽어내려는 의도 아래 1920, 30년대 한국 식민지 근대의 여성 공간을 화두로 삼은 점이 눈에 띤다.
무엇보다, "탈식민"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일제 식민 압제의 잔여물에 대한 극복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가장 주변화되고 박탈당한 여성들의 시각과 공간으로부터 우리의 근대성을 재조명해내는 분석은 우리의 식민지 근대가 지닌 복잡성을 여하한 단순화나 환원을 피하면서 잘 포착하고 있다. 식민지 근대 시기의 여성 공간이 제국주의적 폭력, 계급적 갈등, 봉건적 잔재, 민족주의적 욕망, 가부장적 권력이 교차되는 심급이라는 것이다.
"젠더화된 하위 여성 공간"이라는 방법론적 개념틀은 소위 "주체적" 입장을 표방하는 민족주의적 연구들에 이론적으로 생산적인 위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토착 민족주의, 우파 민족주의, "선한" 민족주의 등 그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 있다고 할지라고 민족주의 자체가 가부장제에 바탕하고 있는 한, 여성에 대한 맹점을 안고 있다.
또한, 토착성을 강조하는저간의 민족주의적 논의들은 식민지 근대 상황에서 피식민 주체의 자발성과 자생성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근대성을 여전히 따라가야 할 무엇 혹은 완성되어야 할 규범으로 상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에 실린 몇 편의 탁월한 논의들은 서구적 근대성을 전제하는 한, 애초의 연구 의도와는 달리 서구중심적 패러다임의 주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이런 문제 의식에서 이 책의 연구자들은 식민지 근대의 여성들을 "역사적 주체"로서 전면에 내세운다. 한국 식민지 근대의 심장부에서 탄생했으면서도 가장 주변화된, 여성들의 삶과 경험은 이전 시대와 달리 새롭게 부상했던 주체화 양식이 시간성보다는 공간성을 통해 촘촘하게 구축되는 과정을 징후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한국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편입되는 역사적 과정은 식민성을 근대성의 내재적 구성 요소로 보게 한다. 우리는 한국 식민지 근대의 식민성과 근대성을 여성이 말 그대로 역사의 동력으로서 적극적으로 편입되었던 특정한 역사 시기의 집단적 체험을 아우르는 것으로 설정된다.
젠더 유물론에 기초한 식민지 근대의 여성 공간을 부각시키는 페미니즘 문화론이야말로 한국판 탈식민 페미니즘을 진전시키는데 의미있고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식민지 근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국면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그러나 차별적으로 구조화되는 양식을 잘 규명하고자 하는 가운에, 그 속에서 다양한 여성 하위주체들이 그 나름의 역사 인식과 정치적 교섭을 창출했던 집단적 노력을 밝히는 대목은 자못 감동적이다.
한국 식민지 근대의 복잡한 주체화 양식과 여성을 역사적 주체로 인식하고 여성의 일상과 체험을 조밀하게 분석해내고 있는 이 연구서는 서구추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근대적 인식론을 내파, 외파하는 지점들을 짚어낸다.
2년여에 걸친 연구작업을 통해서 도달한 이 연구의 잠정적 결론을 보자면, 1) 여성의 몸이 식민지 근대의 모순을 가장 복잡하게 체현하고 있는, 최종심급으로 작용한다는 점. 2) 여성들의 몸이 최종심급이 되었던 식민지 근대의 주체화 양식은 시간성보다는 공간성을 통해 구축된다는 점. 3) 식민지 근대 공간에서 새롭게 형성되거나 상당한 변형을 겪어야 했던 여성 공간들은 가부장적 식민주의 자본의 가혹한 착취, 남성주의적 민족주의 담론, 유교적 가부장제의 여성 섹슈얼리티 단속 및 모성을 포함한 여성성의 재구성, 생존 자체가 문제시되는 거의 절대 빈곤 상태의 식민지 상황의 모순들이 복잡하게 교직되는 장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