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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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 흑인여성작가들은 흑인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작업하면서 인종문제를 젠더와 섹슈얼리티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다 복잡하고 정교하게 재검토함으로써 흑인 민족주의 담론과 흑인미학에 비판적으로 개입해 왔다. 글로리아 네일러(Gloria Naylor 1950-) 역시 여성의 종속을 당연시하는 남성중심적 흑인민족주의에 비판적으로 개입해 온 흑인여성작가이다. 네일러는 1960년대에 거의 동시적으로 발흥한 흑인민권운동, 여성운동, 급진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왔다. <브루스터 플레이스의 여성들>(The Women of Brewster Place 1982), <린든 힐즈>(Linden Hills 1985), <마마 데이>(Mama Day 1987), <베일리의 카페>(Bailey's Cafe 1992), <브루스터 플레이스의 남성들>(The Men of Brewster Place 1998) 등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네일러의 기획은 페미니즘과 흑인 민족주의를 생산적으로 절합하는 것이다. 흑인 민족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모리슨, 워커, 엔토자케 샹게(Ntozake Shange), 존스 등과는 달리 네일러는 흑인 민족주의의 정치적 유효성을 보다 명시적으로 인정하면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이자 흑인 민족주의자로 규정하며 흑인여성의 입장에서 흑인 민족주의의 남성중심적 편향을 극복하려 한다. 네일러가 보기에 미국 사회에서 인종이 권력관계의 핵심축들 중 하나로 작동하는 한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흑인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흑인 민족주의가 노정해온 남성중심적 문화는 남성만을 역사의 주체로 상정하고 흑인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을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흑인공동체에서 여성의 종속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선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보자. 

네일러는 매티와 시엘의 관계를 노예제 시절부터 미국에 존재해 왔던 흑인여성의 전통에 위치시키면서 경험의 공유뿐만 아니라 감정이입(empathy)의 윤리가 강력한 자매애를 형성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매티가 낙태와 사고로 인해 두 아이를 잃은 시엘을 치유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들 중 하나다. 이 장면은 흑인여성이자 어머니로서 경험을 공유한 매티와 시엘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이야말로 인종, 젠더, 계급, 성이 맞물려 작동하는 사회적 심리적 억압이 강요하는 비인간화에 대항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힘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세리나가 죽자 시엘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자신 역시 죽기를 기다린다. 시엘이 세리나의 죽음에 대한 절망과 유진에 대한 분노를 자기절멸로 표현하고 있음을 간파한 매티는 그녀를 꼭 안고서 말이 아닌 촉각의 언어와 제의를 통해 치유하려고 한다.

그녀는 시엘을 안고서 수정처럼 맑게 빛나는, 어머니의 품에서 강제로 떨려나와 넵튠 에게 바쳐진 아기들의 신선한 피가 분홍빛 포말처럼 찰랑거리는 에게해 위로 흔들었다. 그녀는 계속 그녀를 흔들며, 넋을 잃은 유태인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들의 창자를 쓸어담았던 다추를 지났다. 노예선 갑판 위에서 내던져진 세네갈 아기들의 찢겨진 머리를 지났다. 그녀는 계속 흔들었다. 그녀는 [시엘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살해당한 꿈들을 보도록 시엘을 흔들었다. 그녀는 그녀를 계속 흔들어서 자궁속으로, 상처의 가장 깊은 곳으로 인도했다. . . . 몸이 멈추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들은] 고통의 악을 쫓아내는 중이었다. . . . 그녀는 천천히 그녀를 목욕시켰다. . . . 마치 새로 태어난 아이를 다루듯이.

시엘의 몸을 흔들면서 매티는 아이를 상실한 시엘의 고통을 여성전체 그리고 흑인노예여성의 경험과 연결한다. 그리고, 시엘의 구체적인 개별적 맥락에서 상처를 보듬어 줌으로써 시엘의 절망과 분노가 울음이 되어 터져 나오게 한다. 시엘의 “몸속 깊이 박혀있는”(103) 고통의 조각들을 쫓아내려는(exorcising) 매티의 의식은 상징이 아니라 몸을 통한 제식이다.  시엘 장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어 우는 시엘이 자기절멸의 욕망대신 세리나의 죽음을 애도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바-매티-시엘로 이어지는 하위주체 흑인여성들의 계보는 모성이나 혈연관계가 없는 여성들 사이의 자매애로도 연결된다(이경순; Andrews). 매티의 어린 시절 친구인 에타는 여러 흑인남성들과 만족스럽거나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며 북부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매티가 사는 브루스터로 온다. 브루스터에서 에타는 우즈(Woods) 목사를 통해 안정된 삶을 살려했던 마지막 시도 역시 좌절당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매티의 “빛과 사랑과 위안”이라는 점을 깨닫는다(74). 매티와의 우정 속에서 에타 역시 브루스터의 젊은 흑인여성들을 도우며 대안 어머니로 살아간다. 대안 어머니들로서 매티와 에타의 삶은 하위주체 흑인여성들 역시 더 나은 삶을 향한 변화를 가능하게 할 집단적 정치적 주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네일러는 흑인여성 중심적 문화와 전통이 존재해왔다는 점을 분명하게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흑인민족주의 담론과 실천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네일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여성들 사이의 유대는 혈연을 뛰어넘는 어머니-딸 관계와 자매애 둘 다를 아우르며 한쪽의 일방적 희생에 기반하지 않는 상호성을 그 핵심으로 한다. 집에서 쫓겨난 매티를 거두어 주는 여성은 매티와 아무런 연고관계가 없는 이바 터너(Eva Turner)다. 외손녀 시엘(Lucielia)과 함께 사는 이바는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채 같은 거리를 맴돌고 있는 매티가 미혼모임을 알아보고 자신의 집에 들여 30년간 매티와 베이즐이 시엘과 대안 가족을 이루며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이바는 시엘과 베이즐을 돌봐줌으로써 매티가 육아에 대한 걱정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30년 동안 매티에게 “또 다른 어머니”(39)였던 이바를 통해서 네일러는 하위주체 흑인여성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힘들 중 하나가 생물학적 모성을 넘어선 공동체적 모성 혹은 돌봄의 문화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네일러가 흑인 민족주의의 남성중심적 편향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통찰로 제시하는 대안 어머니 전통은 매티와 시엘의 관계에서 그리고 매티와 에타(Etta)의 우정에서 잘 드러난다. 우선 매티와 시엘의 관계는 대안 어머니 정신이 어른-아이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흑인여성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바의 손녀인 시엘은 이바가 죽은 후 부모와 함께 노스 캐롤라이나와 테네시 주에서 살다가 유진(Eugene)과 결혼하여 브루스터로 온다. 어느 직장이고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쉽게 해고되는 유진은 시엘을 온전히 자기 지배하에 두려고 함으로써 좌절된 남성성을 보상받으려고 한다. 네일러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엘과 유진의 가정생활이 인종차별주의적 고용에 기인한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지배를 인종차별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성차별주의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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